3개월짜리 일이 2주가 됐을 때 — 200개 카테고리 아이콘 혼자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의 기록

헤드라인

3개월이 2주가 됐어요.

오늘의집 그래픽 디자이너 루카(Luka)의 얘기예요. 몇 년 전 다른 플랫폼에서 홈 화면 3D 아이콘 20여 개를 만드는 데 기획부터 제작까지 3개월이 넘게 걸렸대요. 이번에는 오늘의집 홈 개편을 앞두고 200여 종의 카테고리 아이콘을 혼자 새로 만들어야 했고요. 결과는 2주.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게 GPT 기반의 이미지 봇이에요.

기존 카테고리 아이콘의 4가지 문제

오늘의집 홈에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카테고리 아이콘이에요. 기존엔 세부 메뉴를 거쳐야 볼 수 있었던 상품 카테고리 아이콘이 이번 개편에서 홈 화면 전면에 배치됐거든요. 문제는 기존 아이콘 이미지의 상태였어요.

▲ 기존 카테고리 사진 이미지

사진 수급처가 일정하지 않아 해상도가 낮은 게 있었고, 촬영 각도와 조명값도 제각각이었어요. 비례감도 통일되지 않았고, 실제 사진을 그대로 써서 아이콘으로서의 시인성이 떨어졌고요. 그러니까 단일 사이트의 단일 컴포넌트인데 비주얼 일관성이 무너져 있던 거예요.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규모. 오늘의집이 생활 전반을 다루는 커머스 플랫폼이다 보니, 카테고리 아이콘 종류가 200여 종이 넘는다는 거였거든요. 전부 재촬영하거나 그래픽으로 새로 제작? 그래픽 디자이너 한 명으로는 리소스 측면에서 불가능했어요.

▲ 오늘의집의 200여 종의 상품 카테고리

그래서 AI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일정한 퀄리티의 사진형 그래픽 에셋을 생성할 수 있는 GPT 기반 이미지 봇을 만들고, 그걸로 에셋을 찍어내는 방식이었죠.

'느좋'을 데이터로 — 이미지 봇 만들기 1단계

'느좋'이라는 말이 있어요. '느낌이 좋다'는 뜻인데,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가 달라요. 멋지고 쿨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그 실체는 각자가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거든요.

▲ '느좋'의 예시 이미지. 모두가 막연히 '멋진 것'을 떠올리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각자 다르다

AI도 똑같아요. '좋은 이미지와 그래픽'에 대한 세부 가이드를 안 주면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려요. 그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AI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을 위한 거였어요. "내가 무엇을 '좋다'고 판단하는지"를 구체화하는 작업.

루카는 막연한 직감으로 좋다고 느꼈던 상품 이미지 레퍼런스를 여러 플랫폼과 리빙 편집샵에서 모았어요. 그 데이터를 LLM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 공통점을 도출했고요. 결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정리됐어요.

▲ 좋은 카테고리 이미지에 대한 레퍼런스 찾기

  • 구성 — 하나의 오브젝트만 등장. 복수 오브젝트가 한 이미지에 안 나오고, 되도록 정중앙에 위치
  • 조명 — 균일하고 안정적인 제품 중심 조명. 드라마틱하거나 강한 색조 조명 안 씀, contrast 강하지 않은 균일한 명도 유지
  • 배경 — 환경 연출 없이 화이트 배경
  • 구도 — 소실점 없는 정투영(orthographic) 구도, 수직·수평 정렬 유지
  •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어요. 막연히 '좋다'고 느꼈던 이미지들의 공통점이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나니, 그건 더 이상 주관적인 '느낌이 좋음'이 아니었거든요. 균일한 이미지 에셋을 만들 수 있는 규칙이자 토대가 됐어요. 감각이 시스템으로 변환되는 첫 지점이에요.

    "이 스타일대로"가 아니라 "이 범위 안에서" — 2단계의 관점 전환

    정의한 가이드를 프롬프트로 만들어 GPT 봇 지침에 넣었어요. 그런데 정교화가 필요했어요. "소실점이 없는 정투영 구도", "수직·수평 정렬 유지" 같은 텍스트만으로는 통일된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명과 각도의 기준을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여러 이미지 레퍼런스를 Good 케이스와 Bad 케이스로 분류해 입력했어요. 각 이미지가 왜 Good인지 Bad인지를 AI가 스스로 분석하도록 시킨 거고요.

    ▲ 이미지 생성 참고에 좋은 레퍼런스와 나쁜 레퍼런스를 구체적으로 구분한 지침

    Bad 케이스 — 카메라 각도(비대칭 시점, 정면 정렬 아님, 45도 회전), 정투영 위반(소실점 존재 또는 깊이 왜곡), 수직·수평 정렬 불안정. Good 케이스는 그 반대예요. 오브젝트가 정면을 향하며 기울기·회전 없음, 소실점 없고 깊이 왜곡·투시감 없음, 수직·수평 정렬 정확.

    여기서 결정적인 관점 전환이 있었어요. '이 스타일대로 만들어라'가 아니라, '이 범위 안에서 만들어라'. 명령이 아니라 영역을 지정해주는 방식이에요. AI는 Good/Bad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각도 규정의 세부 요소를 정의하고, 이후 생성되는 모든 이미지가 그 기준을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됐어요.

    ▲ Good / Bad 레퍼런스 가이드를 통한 이미지 생성의 시각화

    프롬프트 자체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 데는 Claude의 도움을 받았어요. 텍스트 기준을 명령형으로 바꾸고, "소실점 없음"보다 "소실점이 없는 정투영 구도인가?"처럼 GPT가 생성 전에 스스로 검토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강제성을 높였대요. 실제로 준수율도 올라갔고요.

    여기에 자가 체크리스트를 추가했어요. 이미지 생성 전 5가지 항목을 순서대로 통과해야 해요.

    [1] 카메라 각도가 정면인가? 사선·회전 요소가 없는가?
    [2] 소실점이 없는 정투영 구도인가?
    [3] 상하 폭이 동일하고 사다리꼴 변형이 없는가?
    [4] 수직선과 수평선이 완전히 정렬되어 있는가?
    [5] 오브젝트가 단일이고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가?
    하나라도 NO면 즉시 폐기 →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자동 재생성 반복

    조명 가이드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해 추가했고, 이 모든 시각 자료를 PDF 형태로 GPT 빌더의 참고 자료로 등록했어요.

    아이콘으로서의 최적화 — 3단계의 세 가지 원칙

    구도와 조명 가이드를 만든 후엔 생성된 이미지가 '카테고리 아이콘'이라는 기능에 맞게 작동하도록 프롬프트를 추가했어요.

    첫째, 단일 오브젝트 원칙. 하나의 이미지에는 하나의 상품만. 카테고리 아이콘은 용처가 작기 때문에 여러 상품이 한 이미지에 들어오면 시각적으로 복잡해지고 카테고리 의미 전달이 어려워져요. '하나의 상품 = 하나의 이미지'라는 기준을 둔 거예요.

    둘째, 브랜드 노출 텍스트 제거. 특정 브랜드 로고나 패키지 텍스트가 그대로 들어가면 서비스 내에서 의도치 않게 특정 브랜드가 노출돼요. '브랜드 로고, 패키지 텍스트, 라벨 등 문자 요소를 제거할 것'이라는 규칙을 추가했고요.

    셋째, 투명 alpha 배경 출력. 아이콘 에셋은 UI 위에 얹어 사용되니까, 생성 단계부터 배경을 투명한 alpha 채널로 출력하도록 설정했어요. 별도 후보정이나 누끼 작업 없이 바로 쓸 수 있어서 작업 효율이 크게 올라갔다고 해요.

    결과 — 2주, 200여 종, 그리고 다른 부서로의 확장

    이 정교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이미지 봇으로 200여 종이 넘는 카테고리 아이콘을 약 2주 만에 만들 수 있었어요. 홈 개편 전까지 모든 카테고리 아이콘을 리디자인해 적용 완료.

    리디자인된 카테고리 아이콘 1

    리디자인된 카테고리 아이콘 2

    ▲ 새롭게 리디자인된 카테고리 아이콘 이미지와 실제 적용 화면

    물론 수작업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상품을 고르고, 생성된 이미지를 에셋 비율에 맞게 다듬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던 구간이 변하니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픽 생성 효율이 올라갔어요.

    한 가지 더. 이미지 봇은 원래 카테고리 에셋용으로 만든 도구였어요. 그런데 촬영 환경이나 이미지 품질에 상관없이 어떤 상품 이미지든 브랜드팀 표준으로 정돈해주다 보니, 다른 직무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 보였대요. 그래서 활용 가이드를 정리해 당장 쓸 수 있는 부서에 공유했고, 지금은 사용자 피드백 기반으로 프롬프트를 고도화하면서 콘텐츠 제작에도 조금씩 적용하고 있어요.

    ▲ 이미지봇의 여러가지 활용 예시

    디자이너의 역할이 바뀌는 자리

    루카가 마지막에 정리한 말이 인상적이에요. 단순히 그래픽 에셋을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서비스의 그래픽을 브랜드적 언어로 정의하고 체계를 마련하며, 그것이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더 큰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는 시대가 됐다는 것.

    브랜드 언어를 정의하고 그래픽을 고도화하는 일에는 여전히 디자이너의 깊은 감도와 고민이 필요해요. 그건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거든요. 하지만 수백 개의 에셋을 만드는 반복 작업에서는 AI가 든든한 힘이 돼요. 3개월이 2주가 됐을 때 남은 시간은, 고스란히 더 중요한 고민에 쓸 수 있게 됐고요.

    감각을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결국 감각이 명확했다는 뜻이에요. 막연한 '좋음'을 가진 사람은 AI한테도 막연한 결과물만 받게 되거든요. 거꾸로 말하면, AI 시대에 디자이너의 첫 번째 일은 자기 감각을 분해하고 언어화하는 거예요. 그래야 AI가 그 언어를 따라올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