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 주가 20만 원에서 3만 8천 원 — 서울 피그마 행사에서 마주한 디자이너의 위기

헤드라인

서울에서 열린 Design Systems with Figma 행사에 다녀왔어요. 제목에서부터 하나가 읽혀요 — 디자인 시스템이 피그마의 정체성이자 철학, 그리고 생존법이라는 것.

행사 현장

행사장 전경

새 기능 데모를 보면서 박수를 치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디자이너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올라왔거든요. 정해진 미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키노트가 말한 세 가지 — Nimble, Codebase, Whole Team

키노트 슬라이드

키노트는 슬라이드 한 장으로 요약돼요. 세 줄.

Nimble by design — "일을 더 간단하게, 더 쉬운 디자인 시스템." 변수 확장, 슬롯, 디자인 체크 같은 기능으로 설계 자체를 민첩하게 만들겠다는 거죠.

Codebase context — "디자인 시스템이 코드 맥락에 연결된다." 디자인 파일 안에서 코드가 직접 연결되도록 해서 디자인과 코드 사이의 번역 과정을 없애겠다는 건데,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에도 연결돼요. Code Connect, MCP 서버.

Built for the whole team — "디자인 시스템은 전체 팀을 위해 만들어졌다." 개발자, PM, QA, 마케터까지. Dev Mode, Slides, Buzz.

Slot과 Check Design — "이걸 이제야 해주다니"

실무 디자이너들을 위한 주요 기능 두 가지가 데모와 함께 공개됐어요.

Slot 기능 데모

Slot은 인스턴스 중간에 콘텐츠를 삽입할 수 있는 기능이에요. 이전까지는 인스턴스 내부 콘텐츠를 바꾸려면 컴포넌트를 깨거나(detach), 내부 콘텐츠도 배리언트로 정의해서 nested 해야 했잖아요. 이제 detach 없이 내부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어요. 모든 디자이너들이 고통받았던 건데... 이걸 이제야 해주다니 기쁘면서도 박수치는 게 맞나 싶었더라고요. (읽다가 웃었어요.)

Check Design 기능 데모

Check Design은 디자인 파일의 "린터"예요. 색상, 폰트, 간격 등 원시값(raw value)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정의된 Variable로 교체를 추천해주는 기능이에요. 개발자에게 파일을 넘기기 전에 돌리는 일종의 validator인 셈이죠. 머신러닝 기반이라 조직 단위로 학습하고 점점 더 정교해진다는 게 특징이에요.

현대자동차 — 3개 브랜드 글로벌 앱을 디자이너 5명이 한다고?

현대자동차 세션

현대자동차 규모에 비해 모바일 디자이너가 5명이라는 사실에 놀랐어요. 이걸 5명이 한다고? 어디든 다 똑같구나 싶어서 위로와 씁쓸함이 동시에 올라왔죠. 디자인 시스템뿐 아니라 플러그인 개발, MCP 연결까지 프로세스 자체를 뜯어고치는 접근을 보면서, 이 규모를 감당하게 만드는 건 사람의 수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잘 만든 시스템이라도, 현장에서 사용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듀오톤의 네거티브/포지티브 — 법에서 디자인 규칙을 가져오다

듀오톤 발표 1

듀오톤 발표 2

듀오톤에서는 디자인 시스템이 진짜 가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가져왔어요. 법과 규제에서 쓰는 네거티브/포지티브 개념을 디자인 시스템에 적용한 거예요.

Negative 방식 — 반드시 지켜야 할 것만 통제하고 나머지는 자유. Positive 방식 — 허용할 것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금지.

큰 조직을 통제하는 방식을 디자인 밖의 사회적 규약에서 가져온 건데, 이 발상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스템이 견고할수록 현장은 우회한다 — 이 전제에서 출발한 거니까요.

굴러가면 그만 — 디자인 시스템의 불편한 진실

새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형편없이 무질서한 상태를 많이 만나요. 프로젝트의 업력과 규모와 상관없이,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죠. 그때마다 무질서함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내 가치를 체감하거든요. 이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디자이너로서 존재 가치를 느끼는 순간.

근데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 무질서 속에서도 프로젝트는 돌아가요.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매출이 나고, 서비스는 운영되고, 사용자는 써요. 회사의 존재 이유는 이익 실현이잖아요. 결국 돈 문제.

우리가 혐오하는 레거시는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이에요. 디자인 시스템 구축에 6개월을 쓰고 인력을 투입하는 게, 어지러운 채로 빠르게 출시하는 것보다 정말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내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믿고 싶죠. 근데 그걸 숫자로 증명하라고 하면? 결과론적이라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내 사랑 피그마, 그리고 주가 3만 8천 원의 의미

피그마 주가 그래프

피그마가 상장했을 때 주가가 20만 원까지 치솟았어요. 그때 주식을 샀어요. 팬심으로 굿즈처럼. 매일 이 툴 덕분에 숨 쉴 수 있는 디자이너로서, 어도비라는 골리앗에 맞서 승리한 다윗을 응원하는 마음이었죠.

지금 주가는 3만 8천 원 언저리예요.

피그마가 못해서가 아니에요. 피그마가 서 있는 땅 자체가 흔들리고 있어요. 피그마는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가 명확히 나뉜 세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제품이에요. 그 사이의 협업 고통을 줄여주는 것, 디자이너 간의 마찰을 줄여주는 것. 우리가 피그마를 순수하게 사랑해온 이유죠.

문제는 이 마찰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개발자가 디자이너 없이 제품을 만들어내요. 기획자가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서 공유하고요. "디자인 파일을 넘긴다"는 행위 자체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서, 피그마의 시장 임팩트가 디자이너들이 응원하는 것보다 작을 수 있어요.

피그마도 이걸 알아요. Dev Mode로 개발자를 끌어오고, Slides로 마케터와 PM을 품고, MCP 서버로 AI 에이전트와의 접점을 만들고 있잖아요. 디자이너 중심 툴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의 플랫폼으로, 협업 툴에서 사고 체계 자체로 확장하겠다는 거예요.

대담 세션에서 듀오톤 대표님이 한 말이 가장 무거웠어요.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의사결정권자가 피그마의 가치를 깨닫게 할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 "협업이 개선됩니다"라는 말은 실무자를 없애버리는 시장 상황에서 점점 힘을 잃고 있으니까요.

AI는 그들이 원하는 말을 갖고 있어요. 현실은 끔찍하게도 정치적이에요.

타자원이 사라진 것처럼, 디자이너도 사라질까

디자이너의 미래

컴퓨터 보급 전에 타자원이라는 직업이 있었어요.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전문직이었죠. PC가 보급되면서 타이핑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걸 전문으로 하는 직업은 사라졌어요.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어디에나 있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없는 순간이 올까.

AI가 실시간으로 UI를 만들어내요. 유저 니즈에 따라 UI가 동적으로 변하고, 웹은 흘러가는 공간이 돼버렸어요. 디자인의 주인은 없어졌고요. 낱개의 버튼, CSS 코드 한 줄이 이전의 무게를 가질 수 없게 됐어요. MD 파일 하나가 디자이너를 대신할 수 있게 됐죠.

이전의 디자이너는 하나하나를 그렸어요. 버튼을 그리고, 화면을 그리고, 인터랙션을 그렸죠. 그 행위가 수작업이 됐어요. 현재의 디자이너는 규칙을 만들어내요. 컴포넌트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토큰을 관리하죠. 이제 이 행위마저도 비싸고 느린 수작업이 되어가고 있고요.

그렇다면 미래의 디자이너는 뭘 할까.

듀오톤의 positive/negative 가이드 개념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페이지나 컴포넌트 단위로 정의하던 시대가 가고, 원칙과 경계를 선언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작동하게 하는 것. 미래의 디자이너는 세부적인 실행이 아니라 연출, 경험, 몰입, 감각 자체를 설계하고 디렉팅하는 사람. '왜'에 대해 답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봐요.

2026

행사에서 벗어났다는 점, 내일의 야근이 사라진다는 발표를 들으니 피그마가 좋았고, 이 행사가 좋았어요. 돌아오는 길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게 끝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