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움은 위험에 반비례해야 한다, 토스 10년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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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받을 배당금'에서 '앞으로'를 지우면 '받을 배당금'이 됩니다. 뜻은 그대로고 글자는 줄었죠. 토스 내부에는 의사 전달에 영향이 없는 단어를 걷어내는 '잡초 뽑기(weed cutting)'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원칙이 토스의 10년을 가장 잘 요약한다고 생각합니다. 혁신도, 그늘도 이 원칙 안에 다 들어 있어요. 무엇이 잡초인지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느냐에 따라서요.
디지털 인사이트의 기사는 토스 UI·UX가 국내 디지털 프로덕트의 표준을 바꾼 과정과, 그 '쉬운 금융'이 고위험 상품에서 부른 논란을 함께 다룹니다. 기사의 결론은 다음 10년엔 얼마나 더 쉬워질지와 함께 신뢰 확보가 관건이라는 것인데,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구체적으로 가고 싶습니다. 문제는 단순함이 아니라, 위험과 상관없이 한 가지 문법을 쓴 데 있었습니다.
한 화면에 한 가지 판단
2015년 간편 송금으로 출발한 토스는 "공 던지듯 쉽고 간편한 금융"을 내걸었습니다. 라이팅은 간결하게, 전문 용어는 줄이고 '해요체' 같은 구어체로. 화면은 한 화면에서 사용자가 내릴 판단을 하나로 제한하는 'One Thing per Screen' 원칙으로. 계좌번호, 인증서, 비밀번호를 한 화면에 몰아넣던 기존 금융 앱을 스크린 단위로 잘게 쪼개 인지 부담을 줄였고, 정보로 빽빽하던 화면에 여백을 크게 줬습니다.

성과는 숫자로도 나왔습니다. 토스뱅크는 포브스 '세계 최고 은행' 평가에서 4년 연속 국내 1위에 올랐고, 금융인사이트리포트의 '2025년 금융 앱 고객경험 평가'에서는 40개 금융 앱 중 1위로 2년 연속 선두였습니다. 금리와 점포망이 은행을 고르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사용자 경험이 고객을 움직인다는 해석이 붙었고요. 2020년대 들어 주요 시중 은행들이 자체 UX 라이팅 가이드를 만들었고, "누구에게 보낼까요?", "돈 보냈어요" 같은 말투는 금융 앱의 기본 문법이 됐습니다.
저는 이 원칙들이 송금이라는 과제에 완벽하게 맞았다고 봅니다. 송금은 사용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받는 사람과 금액이 분명하고, 잘못 보내도 손실의 상한이 보내는 금액으로 정해진 일입니다. 이런 일에서 마찰은 순수한 비용이에요. 화면을 쪼개고 말을 줄이고 단계를 없앨수록 사용자는 덜 지치고 덜 실수합니다.
같은 문법이 미수거래를 만났을 때
문제는 같은 문법이 성격이 전혀 다른 상품에 그대로 쓰일 때 생겼습니다. 2024년 토스증권은 주식 미수거래 서비스를 열며 '미수거래'를 '외상구매'로 바꿔 불렀습니다. 미수거래는 증권사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3일 안에 대금을 갚지 못하면 주식이 반대매매되는 고위험 거래입니다. 초단기 '빚투'라고도 불리고요.

잡초 뽑기의 눈으로 보면 '미수'는 어렵고 낯선 단어라 걷어낼 대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였어요. 낯선 단어는 사용자를 멈추게 하고, 멈춘 사용자는 찾아보고 묻습니다. '외상'은 동네 가게에서 쓰는 친근한 말이라 아무도 멈추지 않죠. 결국 금융감독원의 시정 명령으로 토스증권은 이듬해 1월 용어를 '미수거래'로 되돌렸습니다.
지난해 말 해외주식 옵션 사전 체험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다음주 ㅇ요일에 ㅇㅇㅇ의 가격이 현재보다 오를까요? 내릴까요?"라며 클릭을 요구하고, 하단의 '이해했어요' 버튼을 누르면 "짝짝짝 ㅇㅇㅇ님도 옵션 박사"라는 말이 떴습니다. 레버리지가 크고 만기와 변동성 같은 변수가 많은 파생상품을 홀짝 게임처럼 안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본사를 찾아 경고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이해했어요' 버튼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이해했어요'라는 의미를 진짜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질타했듯, 그 버튼은 이해를 확인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해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장치입니다. One Thing per Screen 원칙에 따라 한 화면에 한 판단만 남기고 그 판단을 '이해했어요'로 만들면, 화면 단위로는 완벽하게 단순하지만 사용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은 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다른 기획자의 말처럼 그 쉬움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 없이 참여하게 된다면, 그건 UX가 아니라 위험을 포장한 마케팅이죠.
마찰은 위험에 비례해야 한다
그래서 제가 이 10년에서 읽은 숙제는 '덜 쉬워지기'가 아니라 '위험에 비례해서 쉬워지기'입니다. 마찰을 얼마나 둘지를 화면의 미학이 아니라 그 행동의 위험으로 정하는 거예요. 기준은 둘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 행동을 되돌릴 수 있는가, 그리고 사용자가 잃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얼마인가.
송금은 되돌리기 어렵지만 손실 상한이 보내는 금액으로 정해져 있으니 지금처럼 쉬워도 됩니다. 미수거래는 반대매매라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있고 손실이 원금을 넘어갈 수 있으니, 용어를 낯선 그대로 두고 '3일 안에 갚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숫자로 보여 주는 화면이 하나 더 있어야 합니다. 옵션처럼 손실 구조가 복잡한 상품이라면 '이해했어요' 대신 사용자가 실제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 예컨대 '이 가격까지 내리면 내 손실은 얼마일까요?' 같은 문항이 들어가야 하고요. 단순함의 도구를 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같은 도구를 위험이 낮은 곳엔 세게, 높은 곳엔 약하게 쓰자는 겁니다.
이걸 디자인 시스템의 규칙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화면을 설계할 때 '되돌릴 수 있음/없음'과 '최대 손실 구간'을 메타데이터로 붙이고, 그 값이 높으면 잡초 뽑기의 예외 목록이 적용되는 식으로요. 위험을 알리는 단어는 잡초가 아니라 울타리라는 걸 문서로 정해 두면, 다음 신상품을 맡은 팀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토스처럼 해 주세요"가 놓치는 것
기사에는 웃픈 장면도 하나 나옵니다. 디자이너 커뮤니티에선 "피피티는 애플 말투로, 서비스는 토스 말투로"라는 농담이 돌고, 금융과 무관한 건설 기업이 토스처럼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는 에이전시 관계자의 증언까지 있어요. 해요체와 넓은 여백과 한 화면 한 질문을 가져다 붙이면 토스가 될 거라는 기대죠.
저는 이 요청이 토스의 진짜 자산을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 은행 업무도 토스에서 먼저 본다는 한 사용자가 기사에서 한 말이 정확합니다. 토스의 성공 비결은 송금이 편해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그 불편을 줄여 온 데 있다고요. 말투와 여백은 그 질문의 결과물입니다. 결과물을 베끼면 질문은 따라오지 않아요. 건설 기업의 사이트에서 사용자가 불편한 게 무엇인지 묻지 않고 토스 말투만 입히면, 그건 토스가 아니라 토스의 표면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계속 던졌기 때문에 토스는 금융을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수거래와 옵션에서 미끄러진 건 그 질문을 '어디를 더 쉽게 만들까'로만 던지고 '어디는 쉬우면 안 될까'로는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쉬운 금융을 연 회사라면 쉬움을 어디서 멈출지도 가장 먼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에 비례하는 마찰 규칙은 해요체 가이드보다 만들기 어렵지만, 금융 앱이 사용자에게 지는 책임에는 그쪽이 훨씬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