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맨날 위기인 건 경영을 못 해서가 아니라 원래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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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해도, 독자가 늘어나도, 구독자가 수백만 명이 돼도 언론은 늘 위기를 말해요. 계절이 바뀌듯 반복되는 긴축 이야기. 광고가 줄어서, 플랫폼이 시장을 빼앗아서, 사람들이 더 이상 신문을 사지 않아서. 설명은 많아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기술은 분명히 시장의 구조를 바꾸었고, 언론 산업에 큰 충격을 줬으니까요. 근데 솔직히 저는 점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돼요. 언론이 원래부터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이었다면 어떨까요. 경쟁에서 진 게 아니라, 애초에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언론은 산업이라기보다, 도로와 학교와 병원에 더 가까운 존재일지도 몰라요. 돈이 되지 않아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 말이에요. 만약 언론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목표 자체가 시장에서 돈이 되기 어려운 성격의 재화라면, 우리는 언론에 관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건 꽤 불편한 질문이에요.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경쟁이 소비자에게 더 좋은 상품을 준다고 하는데, 언론은 이 경쟁 속에서 우리에게 더 좋은 상품을 줄 수 없어요. "자본주의 시장에 내던져진 언론은 성공할 수 없다." 좀 과격하게 들리지만,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면 그렇게 무리한 주장도 아니에요.
나침반 두 개를 동시에 들고 걷는 산업
먼저 언론 산업이 다른 산업과 어떻게 다른지부터 짚어볼게요.
현재 자본주의 시장에서 언론도 하나의 산업이에요. 언론사는 기업으로서 직원이 있고, 비용이 들고, 수익을 내야 하죠. 신문사든 방송사든 온라인 매체든, 운영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월급을 지급해야 하고, 취재를 위해 이동해야 하고, 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서버를 유지해야 하죠. 이 점에서는 다른 기업과 다를 것이 없어요.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고, 가능하다면 더 많은 수익을 내고 더 안정적인 조직이 되는 것. 모든 기업의 자연스러운 목표고, 이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조직이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에요.
근데 언론에는 여기에 하나가 더 붙어요. 다른 산업에서는 거의 요구되지 않는 목표가 하나 더 있어요. 바로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표예요.

이건 개별 기업이 스스로 선택한 전략이라기보다 사회가 언론이라는 산업 전체에 부여한 역할에 가까워요. 우리는 언론이 단순히 정보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문제를 드러내고, 시민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라고 기대하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선거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유권자가 정보를 알아야 하고, 정책이 제대로 평가되려면 그 정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보도가 필요하잖아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부패가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건 시장이 요구한 역할이 아니에요. 민주주의가 요구한 역할이죠. 꼭 돈이 되기 때문에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는 거예요.
상업적 생존과 민주주의 기여. 각각 따로 놓고 보면 둘 다 매우 합리적인 목표예요. 근데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할 때, 언론은 다른 산업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않는 긴장 상태에 놓이게 돼요. 왜냐하면 이 두 목표가 종종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거든요.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뉴스가 항상 가장 많이 읽히는 뉴스는 아니잖아요. 지역 예산의 구조를 분석한 기사나 환경 규제의 영향을 설명하는 기사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할 수 있어요. 근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동시에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할 수도 있어요. 반대로 자극적인 사건이나 논쟁적인 발언을 다룬 뉴스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클릭을 얻을 수 있죠. 시장에서는 후자가 유리해요. 민주주의에서는 전자가 중요하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양쪽 다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는 거예요. 시장 논리가 나쁜 게 아니고, 민주주의 논리가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에요. 문제는 이 두 합리성이 같은 조직 안에서 충돌한다는 점이에요. 이 차이가 언론이 계속 겪는 구조적인 긴장이에요.
또 다른 예도 있어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잖아요. 근데 언론이 비용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취재 인력을 줄이는 거예요. 기자 수를 줄이면 당장 재무제표는 좋아질 수 있잖아요. 근데 동시에 취재의 깊이와 범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지역 사회를 꾸준히 관찰하던 기자가 사라지면, 문제는 발생해도 보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져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가 지나가는 거예요.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로 보면 손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요. 구조가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론은 늘 두 가지 질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해요. "이 기사는 돈이 되는가" 그리고 "이 기사는 사회적으로 필요한가." 이 두 질문이 항상 같은 답을 주지는 않아요.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긴장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도,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도 언론은 이미 이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왔어요. 다만 과거에는 광고 시장이 매우 안정적이었고, 경쟁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긴장이 눈에 덜 띄었을 뿐이에요. 광고 수익이 충분할 때는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보도를 하면서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근데 그건 이 두 목표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 조건이 우연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어요. 광고가 넉넉하니까 간판 기사도 쓰고 탐사보도도 할 수 있었던 거지, 둘이 원래 잘 어울렸던 건 아니에요.
지금 보이는 어려움은 갑자기 생긴 위기가 아니라, 원래 있던 긴장이 더 이상 숨겨지지 않게 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은 단순히 경쟁에서 뒤처진 산업이 아니라 애초에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출발한 산업이에요.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언론이 왜 늘 어려웠는지, 왜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민주주의는 돈이 안 된다 -- 근데 없으면 안 된다
여기서 좀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해요.
민주주의가 돈이 되는 활동이냐. 아니에요. 이 말은 민주주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민주주의는 사회적으로 너무 중요해서,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유지되기 어렵다는 뜻에 가까워요. 우리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 비용을 시장이 알아서 감당해줄 거라고 기대해왔거든요. 근데 문제는 그 기대가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이 정보를 알아야 해요.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기업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지역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꾸준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이 과정에서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문제를 드러내고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게 돼요.
근데 언론의 이런 활동은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은 불확실해요.
예를 들어,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탐사보도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기자가 오랜 시간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법적 검토를 거쳐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는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그 결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밝혀질 수 있어요. 부패가 드러나고, 정책이 바뀌고, 시민의 권리가 보호될 수도 있죠. 근데 그 보도가 반드시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나요? 오히려 비용만 많이 들고, 단기적인 수익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여기서 시장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해요.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이 불확실한 활동은 줄이고, 비용이 적고 수익이 빠르게 발생하는 활동을 늘리라는 방향으로 움직이죠. 이건 특별히 비난할 일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에요.
문제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정보가 바로 그 반대편에 있다는 거예요.

민주주의에 중요한 뉴스일수록 대체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고,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해요. 지역 의회의 예산을 분석하는 기사, 환경 규제의 영향을 추적하는 보도, 기업의 내부 구조를 파헤치는 탐사보도 같은 작업은 모두 장기적인 투자와 전문성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이런 보도는 당장 많은 클릭을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반대로 자극적인 사건이나 논쟁적인 발언, 감정적인 갈등을 다루는 뉴스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생산할 수 있고, 많은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잖아요. 시장에서는 후자가 유리해요. 민주주의에서는 전자가 필요하고요. 이 간극이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긴장이에요.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 자체의 문제.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요. 민주주의에 필요한 정보는 개인이 독점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누군가가 비용을 지불하고 중요한 뉴스를 읽었다고 해서, 그 이익이 그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 전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효과는 넓게 퍼져요. 부패가 드러나면 시민 전체가 혜택을 보고, 정책이 개선되면 지역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돈을 내고 뉴스를 읽으면 나는 어차피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무임승차 문제. 뉴스가 다른 상품과 달리 시장에서 충분한 수익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사람들이 뉴스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뉴스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로 퍼지기 때문이에요.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보 접근을 보장하는 제도들이 존재해요. 공공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 시사 보도를 위한 공정이용,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들. 이런 제도들은 시민이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근데 동시에 이 제도들은 뉴스의 상업적 배제 가능성을 제한해요. 시장에서는 상품을 팔기 위해 배제권이 필요하잖아요.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그 상품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해야 수익이 발생하니까요. 근데 민주주의는 그 반대 방향을 요구해요. 정보는 더 널리 퍼져야 하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원칙 자체는 민주주의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뉴스의 상업적 수익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결국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이 안 돼요. 근데 돈이 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가 필요해요. 언론이라는 인프라가 민주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이게 진짜 고민해야 할 질문이에요. "수익"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에요.
뉴욕타임즈도 뉴스만 팔아서는 안 됐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어요. 그래도 잘 나가는 언론이 있지 않느냐고. 구독자를 수백만 명 확보한 대형 매체도 있고, 재정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공영 방송도 있고, 영향력 있는 비영리 언론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언론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어요.
오히려 이 질문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구조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요. 표면적으로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언론 조직들도, 실제로는 시장 논리만으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이야기하는 뉴욕타임즈를 볼게요. 디지털 전환에 성공했고, 수백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재정적으로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왔어요. 그래서 종종 "구독 모델의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도 하죠.
근데 이 조직의 수익 구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특징이 하나 보여요. 이 회사는 단순히 뉴스를 판매해서 수익을 내는 조직이 아니에요. 뉴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결합한 복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퍼즐과 게임, 요리 콘텐츠, 제품 추천 서비스, 이벤트와 라이선싱 사업 등 여러 영역에서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말하자면 뉴스 자체가 유일한 수익원이 아니라, 브랜드와 플랫폼 전체가 돈을 버는 구조인 거예요.
비즈니스적으로 매우 뛰어난 전략이에요.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동시에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잖아요. 뉴스만으로 대규모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는 것. 뉴욕타임즈가 민주주의를 위한 뉴스만 고집했다면 아마 기업으로서 이렇게 성공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공영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BBC나 NPR 같은 조직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뉴스 서비스를 제공해왔어요.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공공적인 역할도 꾸준히 수행하고 있고요. 근데 이 조직들은 애초에 순수한 시장 경쟁 속에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거든요. 수신료, 기부, 공적 지원, 재단 후원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자원을 기반으로 돌아가죠. 시장에서 발생한 수익만으로 생존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일정한 자원을 제공하는 구조 속에서 유지되는 조직이에요.
비영리 언론은요? 탐사보도로 유명한 ProPublica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보도를 여러 차례 만들었고, 저널리즘의 기준을 높였다는 평가도 받아요. 근데 재정 구조를 보면 광고나 구독 수익이 아니라 기부와 재단 지원, 프로젝트 기반 펀딩이 중심이에요. 이것도 시장 경쟁만으로 운영된다고 보기 어렵죠. 매우 중요한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재정적 기반은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있는 거예요. 이것도 시장 논리만으로 뉴스를 판다고 보기는 어렵죠.
이 조직들의 성공은 자유시장에서 언론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기보다, 오히려 언론이 시장 논리만으로 뉴스를 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이 사례들을 조금 더 넓게 보면 하나의 공통 패턴이 보이기 시작해요. 성공한 언론 조직일수록 시장 밖의 자원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조직은 공적 재원을 통해 유지되고, 어떤 조직은 기부와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어떤 조직은 뉴스 외의 다른 서비스에서 수익을 얻고 있어요. 순수하게 뉴스 판매만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만약 성공한 언론조차 시장 밖의 자원을 필요로 한다면, 문제는 특정 조직의 경영 능력이나 전략에 있는 게 아니라 뉴스라는 상품 자체가 시장에서 가진 한계에 있는 건 아닐까요. 뉴스라는 재화가 가진 성격에 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거든요. 뉴스는 개인이 소비하고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 정보니까요. 그래서 그 가치를 시장 가격만으로 완전히 평가하기 어려워요.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언론 산업의 어려움은 실패의 신호라기보다, 이 산업이 수행하는 역할 자체가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유지되기 어렵다는 신호예요.
뉴스는 도로고 학교고 병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론과 뉴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언론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인프라라는 말은 조금 낯설게 들릴 수도 있어요. 우리는 보통 도로나 철도, 전기망이나 수도 시설 같은 것을 인프라라고 부르잖아요. 눈에 보이고,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유지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고요. 근데 인프라의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기능에 있어요. 그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라는 점. 없어도 당장은 티가 안 나지만, 무너지면 전부 흔들리는 것.
도로가 없으면 물류가 멈추고, 전기가 없으면 산업이 멈추고, 학교가 없으면 사회의 미래가 흔들려요. 그리고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흔들려요.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잖아요. "도대체 민주주의가 뭔데!" 또는 "나는 언론이 민주주의에 도움 되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준다고 생각 안 하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고, 오히려 건강한 의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구조의 일부로 존재해왔어요.
우리는 흔히 정부의 권력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해뒀다고 배우잖아요. 이른바 삼권분립. 근데 이 구조에는 하나의 맹점이 있어요. 이 세 권력이 서로를 제대로 견제하지 않거나, 때로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경우 그들을 감시할 다른 공식적인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바로 그 틈을 메워온 존재가 언론이었어요. (이걸 제4부라고 부르잖아요.)
언론은 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아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권력의 움직임을 드러내고, 숨겨진 사실을 공론장으로 끌어내고, 시민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어요. 권력이 완전히 닫힌 공간에서 작동하지 못하도록, 항상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권력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지거든요.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사회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반 장치예요. 언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고, 시민이 권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언론을 하나의 산업으로만, 다른 기업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왔어요. 수익이 늘어나면 성공이라고 하고, 줄어들면 실패라고 판단했어요.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면 좋은 경영이라고 평가했고, 적자가 나면 구조조정을 요구했고요. 근데 이러한 기준으로는 사회에서 언론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언론의 기능을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세금으로 운영하면 독립은 어떻게 되느냐
뉴스를 사회적 인프라로 보고 공적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와요. 국가가 돈을 지원하면,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언론이 정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세금이나 공적 재원을 통해 운영되는 언론이 과연 정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권력과 자원의 관계를 경계하는 태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니까요.
근데 이 질문은 좀 더 정확하게 바꿔볼 필요가 있어요. 핵심은 공적 자원이 투입되는지 여부가 아니에요. 그 자원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지에 있거든요. 결국 설계가 관건이에요.
우리는 이미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구조를 운영하고 있어요. 대학은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지만, 정부가 연구 주제나 강의 내용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잖아요. 법원은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행정부가 판결 내용을 지시할 수는 없고요. 중앙은행은 공적 기관이지만, 정치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이 기관들이 완벽하게 독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공적 재원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의 도구가 됐다고 보지도 않잖아요. 재정과 권력을 분리하는 장치가 존재하니까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장치들이 어느 정도 작동해왔어요.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뉴스를 사회적 인프라로 바라보고 공적 투자를 논의하는 일은, 뉴스라는 기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제도를 설계하자는 이야기예요.
예를 들어, 공적 재원을 직접 정부가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된 기금이나 위원회를 통해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지원 기준을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정치 권력이 임의로 개입할 수 없도록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여러 기관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특정 권력이 자원을 독점하지 못하게 설계할 수도 있고요. 중요한 건 결정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이에요.
그리고 솔직하게 하나만 더 짚을게요.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이 항상 편집 독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에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언론은 어차피 광고주와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어요.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 기업의 알고리즘이나 정책으로부터의 압력은요? 과연 그게 독립성을 보장하던가요.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결국 어떤 재원도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중요한 건 완벽한 독립을 가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영향력이 더 투명하게 드러나고, 더 견제 가능하며, 더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일이에요.
이 관점에서 보면, 뉴스를 인프라로 보고 사회가 일정한 책임을 지는 구조는 오히려 언론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기보다 더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불안정한 재정 구조 속에서 매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조직이 장기적인 감시 역할을 수행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거든요. 그래서 뉴스에 대한 공적 투자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어요.
우리가 언론이 사회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라고 믿는다면, 그 장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일정한 자원을 투입하는 일은 특별한 특혜가 아니에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언론이 사회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라고 정말로 믿는다면, 그 장치를 시장에만 맡겨두고 "알아서 살아남아라"고 말하는 건 좀 무책임한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