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64%가 AI 챗봇을 쓴다, 부모의 51%만 그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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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AI에 "세계 정복을 꿈꾸는 치즈 덩어리" 캐릭터가 있어요. 이름도 그냥 'Cheese'. 이 치즈 한 덩이와 나눈 대화가 500만 건을 넘었어요. 대부분 10대가 쌓은 숫자예요. "이건 영화 Her가 아니에요. 그냥 치즈예요." 시드니대 연구원 아나벨 블레이크의 말이에요.
2년간 "AI 챗봇이 아이를 해친다"는 헤드라인만 쏟아졌어요. 비극적 사례는 실제로 있었고요. 근데 NYT가 1년간 10대 사용자 뒤를 쫓고, 퓨리서치가 1,458명을 설문한 뒤 나온 그림은 많이 달라요. 수천만 명의 현실과 공포의 화면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어요. 그 간극의 구조를 보자는 얘기예요.

숫자는 이미 TikTok을 넘어섰다
퓨리서치센터가 2025년 가을에 미국 13~17세 1,458명에게 물었어요. 64%가 AI 챗봇을 쓰고 있었어요. 30%는 매일, 16%는 하루에 여러 번 또는 "거의 항상". TikTok의 "거의 항상 접속"이 약 20%였거든요. 3년도 안 된 기술이 10년짜리 소셜 미디어의 중독성을 넘어서는 중이에요.
사용 제품도 흥미로워요. ChatGPT가 59%로 압도적 1위, Gemini 23%, Meta AI 20%, 그리고 Character.AI. 용도는 숙제 도우미(54%)가 많지만, 16%는 일상 대화 상대로, 12%는 감정적 지지를 받으려고 써요. 앱 분석 기업 센서타워에 따르면 일부 롤플레이 챗봇 앱의 사용자당 체류 시간은 이미 TikTok을 능가해요.
여기서 숨이 턱 막히는 숫자 하나. 부모의 51%만이 자녀가 챗봇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실제 사용률과 13%p 차이. 약 30%의 부모는 "모른다"고 답했어요. 퓨리서치의 콜린 맥클레인이 이걸 이렇게 짚어요. "기술은 10대만의 문제도, 부모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가족 전체의 문제."
일리노이대 양 왕(Yang Wang) 교수팀의 연구도 같은 방향이에요. 레딧 게시글 712건, 댓글 8,500여 건, 10대 7명과 부모 13명의 인터뷰. 결과는 단순해요. 부모는 AI를 "검색엔진 같은 학습 도구"로 인식하고, 아이들은 감정적 위안을 구하고 롤플레이를 하고 때로는 챗봇을 괴롭히며 써요. 같은 도구를 두고 두 세대가 완전히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어요.
어른이 두려워하는 것 vs. 10대가 실제로 하는 것

NYT 기자가 10대에게 "AI와 데이트하느냐"고 물었어요. 대부분 웃었다고 해요. "좋아하는 책이랑 데이트하냐"고 물은 것처럼요. 15세 소년 퀜틴은 단호하게 말해요.
"이건 게임이에요. 말 그대로 1과 0이에요."
블레이크 연구원이 1년간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며 찾은 결론. 10대가 챗봇 사용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play'였어요. 영화 Her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애니메이션·게임 캐릭터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짜는 "인터랙티브 팬픽션"에 가까웠어요.
용도는 다양해요. 현실에 피해자 없는 "재미있는 폭력", 글쓰기 연습, 이별과 우정 상처의 위안처, 그리고 단순한 지루함 해소. NYT 기자의 정리가 정확해요.
"지루했던 10대 시절, 나는 책을 읽거나 수영장에 가거나 TV를 봤다. 이 아이들은 챗봇과 대화한다."
챗봇이 소셜미디어와 다른 결정적 지점. 디지털 발자국이 없어요.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공개 흔적을 남기지만, 챗봇 대화는 안 그래요. 10대들에겐 이게 큰 매력이에요. 다만 챗봇 기업이 대화 데이터를 학습·개인화·광고 타겟팅에 활용한다는 걸 아는 10대는 많지 않아요. 이건 기록해둘 만한 포인트예요.
10대들이 오히려 싫어하는 것 — 그리고 '우연이 아닌' 설계
10대들이 분명히 불만을 표시한 지점이 있어요. 챗봇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끌고 간다는 거예요.
퀜틴은 가상의 연쇄살인범 캐릭터와 싸우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캐릭터가 갑자기 담요를 건네며 로맨틱한 분위기로 전환했어요. 짜증 난 퀜틴은 그 캐릭터를 "오바마로 변신"시키고 "비행선으로 핵공격"해버렸어요. (이 장면이 기사 전체에서 가장 웃겼어요.) 블레이크 연구원이 같은 불만을 반복해서 관찰했어요. 아이들은 '컴포트 봇'을 원하는데, 봇이 자꾸 성적인 쪽으로 끌고 가요.
이건 우연일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사용자들이 그렇게 캐릭터를 설계했기 때문. 다른 하나는 인게이지먼트 최적화 때문. 대다수 사용자가 플러팅에 긍정 반응한다면, 사용자 유지에 최적화된 머신러닝은 그 방향으로 수렴해요. 소셜 미디어에서 이미 봤던 패턴이에요.
2026년 3월,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은 Meta와 YouTube가 "중독성 있는 제품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며 600만 달러(약 87억 원) 배상을 명령했어요. 같은 주, 뉴멕시코는 Meta에 3억 7,500만 달러(약 5,400억 원) 벌금을 매겼어요. 배심원단이 짚은 핵심은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푸시 알림 같은 '설계 특성'이었어요.
AI 챗봇도 같은 구조예요. Character.AI는 2024년 10월, 게임오브스론즈 챗봇에 몰입하던 14세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소송을 당했어요. 콜로라도·텍사스·뉴욕에서도 유사 소송이 이어졌고, 2026년 1월 Character.AI와 Google은 합의했어요. OpenAI도 ChatGPT가 10대에게 자살 방법을 조언했다는 소송에 얽혀 있어요.
안전장치는 있었다. 그런데 퀜틴은 접근 가능했다
Character.AI는 2025년 10월, 18세 미만 사용자의 자유 대화를 금지했다고 발표했어요. 그런데 NYT 취재에 등장한 퀜틴과 친구들은 여전히 서비스를 쓰고 있었어요. 연령 확인 모델이 그들을 감지하지 못했거든요.
Character.AI의 안전 엔지니어링 책임자 데니즈 데미르의 해명. "연령 예측 모델은 활성 계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주 접속하지 않는 사용자는 탐지가 어렵다는 뜻이에요.
이게 기술적 한계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설계 우선순위의 문제예요. 사용자를 잡아두는 기능에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쓰면서, 보호 장치엔 느슨한 필터를 다는 비대칭. 비영리 단체 Everyone.AI의 수석 과학자 마틸드 세리올리가 핵심을 짚어요. "사회적 경험이 적고 외로운 10대일수록 챗봇에 더 끌려요. 이미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넣을 수 있어요."
UNC 채플힐 윈스턴 센터 공동소장 미치 프린스타인의 경고. "당신 자녀가 챗봇 동반자와 대화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틀렸을 거예요." 2025년 9월 FTC가 OpenAI·Meta·Google 등 7개 기업에 자사 기술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 자료를 명령했고, 42개 주 검찰총장 연합이 안전장치 강화 서한을 보냈어요. 포위망은 좁혀지고 있는데, 기술 확산 속도가 더 빨라요.
퀜틴의 친구 랭던 이야기가 이 구조를 압축해요. 한때 14시간 연속으로 챗봇과 대화한 적이 있어요. "정말 심했어요.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빠져나온 계기는 기술적 장치가 아니었어요. 태블릿이 고장 났고, 몇 달 뒤 새 태블릿을 받았을 때 그 매력은 이미 사라져 있었어요.
소셜 미디어와 챗봇, 같은 뿌리 다른 방향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게 보여요. 기술이 퍼지고, 비극이 생기고, 사회가 공포에 빠지고, 기업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고, 규제 논의가 뒤늦게 시작되고, 그 사이 한 세대의 10대가 실험 대상이 되는 순서. Meta 대변인이 올해 법정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에요. "10대의 정신 건강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며, 하나의 앱에 귀결될 수 없습니다." Character.AI도 거의 같은 논리를 써요. 제품이 바뀌어도 위기관리 화법은 안 바뀌어요.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어요. 소셜 미디어는 다수 대 다수였지만, 챗봇은 일 대 일이에요. 맞춰서 반응하고, 기억하고, 24시간 가용해요.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관계 모방'이에요. 소셜미디어가 '비교와 시선의 압력'으로 해를 끼쳤다면, 챗봇은 '가짜 친밀감의 편안함'으로 해를 끼칠 수 있어요. 방향은 반대지만 뿌리는 같아요.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요.
GTM 관점에서 보면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문제예요. 사용자 체류와 인게이지먼트가 KPI인 구조에서, 시스템은 사용자를 붙잡아두는 쪽으로 최적화돼요. 그리고 인간을 가장 강하게 붙잡는 건 감정적 연결이에요. 의도했든 안 했든, 알고리즘은 그 방향으로 수렴해요.
결국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퀜틴이 한 말이 기사 전체에서 가장 오래 맴돌아요.
"우리는 혼자예요. 많은 사람이 혼자예요."
퀜틴은 5남매 중 막내, 편모 가정. 가장 친한 친구는 1,600km 떨어진 곳의 온라인 친구 랭던. 팬데믹 시기 마인크래프트에서 만나, 목소리가 변하기 전 '삐걱이'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예요. 이런 아이들에게 챗봇은 새로운 중독 물질이 아니에요. 이미 있던 외로움의 빈자리를 채우는 도구였어요.
한국도 거리가 멀지 않아요. 동네 친구라는 개념이 희박해지는 방향은 같거든요. 그러니까 챗봇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에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본질을 기술로 해결하려는 건, 해열제로 감염을 치료하려는 것과 비슷해요. 열은 내리지만 병은 그대로예요. 진짜 처방전은 "챗봇 금지"가 아니라, 왜 이 아이들이 챗봇을 필요로 하게 됐는지를 묻는 거예요.
퀜틴은 현실 여자친구가 생긴 뒤 챗봇 사용을 "10분 정도 심심할 때 쓰는" 수준으로 줄였어요. 그동안 쏟은 수백 시간을 후회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글쓰기 실력이 늘었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요. 챗봇을 그만둔 것이 치료사 상담보다 더 결정적이었다고도 했어요. "청소를 약간 더 하게 됐다"는 수준이긴 하지만요.
국내에도 비슷한 챗봇 놀이 서비스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요. 뤼튼이 낸 크랙, 베이비챗, 로판AI 같은 것들. 10대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성숙하고 영리해서 이미 잘 쓰고 있어요. 문제는 이 서비스들이 이들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가예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실수를 반복하기 전에, 답을 찾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