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휴머노이드가 싸울 곳은 자주권이 아니라 수리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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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로봇 엄윤설 대표가 지난 15일 경기스타트업서밋에서 한 말은 두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핵심은 가격이고, 그래서 한국은 중국산에 맞설 '소버린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앞 문장에는 숫자가 있고 저도 동의합니다. 뒤 문장은 앞 문장과 부딪히고, 저는 거기서 갈라집니다.
대표의 논리, 가장 강한 형태로
먼저 주장을 공정하게 옮기겠습니다. 에이로봇은 2018년 설립 이후 2024년까지 6년 동안 투자 없이 로봇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휴머노이드는 고객을 못 잡는다는 투자자들의 불신 속에서 자력으로 버틴 거죠. 그 사이 고객 미팅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셋이었다고 합니다. 이 로봇이 얼마나 자주 고장 나는지, 고장 나면 얼마나 빨리 와서 고쳐 주는지, 그리고 가격. 기술력은 그다음 문제였다는 겁니다.
가격 격차는 큽니다. 지능으로는 미국 피규어AI가 앞서지만 가격으로는 중국 유니트리 G1이 가장 무섭고, G1은 중국 마트에서 3000만 원 정도에 팔립니다. 한국 휴머노이드는 보통 약 1억5000만 원으로 5배 차이예요. 원인은 액추에이터입니다. 할인을 받아도 평균 단가가 200만 원이라 30개만 써도 6000만 원이 되고, 그래서 국내 휴머노이드 제작비는 기본적으로 1억 원 정도가 든다는 설명입니다.
에이로봇의 해법은 내재화였습니다. 손을 빼고 31개의 액추에이터가 들어가는 휴머노이드에서, 외부 구매 시 재료비만 1억 원에 이르던 걸 자체 생산으로 액추에이터 단가 60만 원까지 낮췄고, 제작 단가를 3300만 원까지 낮추면 중국과 해볼 만하다고 봅니다. 리니어 액추에이터와 큐비드 액추에이터까지 직접 만들고 있고요. 여기까지는 정확한 진단과 정직한 대응입니다. 31개를 200만 원에 사면 6200만 원, 60만 원에 만들면 1860만 원이니 액추에이터에서만 4000만 원 넘게 빠지는 계산이에요.
그리고 대표는 한 걸음 더 갑니다. 휴머노이드는 소비재가 아니라 생산재이고, 노동 인구가 줄고 인건비가 높고 제조 기반이 있는 한국이 가장 적합한 시장이며, 자국 산업이 외부에 의존하면 "로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3000만원 하던 로봇이 다음 날부터 3억원이 될 수 있다"고요.
두 주장이 부딪히는 지점
제가 갈라지는 건 여기입니다. 대표 본인의 말대로 고객이 낼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고 가성비를 맞추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면, 고객은 3000만 원짜리 G1을 삽니다. 자주권은 고객의 구매 기준이 아니에요. 공장 운영자가 매달 다운타임과 인건비를 계산할 때 '국가의 로봇 자주권'은 그 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주권 논리가 성립하려면 비싼 국산의 차액을 고객이 아닌 누군가, 결국 정부 조달이나 보조금이 대야 합니다. 이 주장이 휴머노이드를 파는 회사의 대표에게서 나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요. 틀린 말이라는 게 아니라, 이건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정책 요구라는 뜻입니다.
숫자도 다시 보겠습니다. 3300만 원은 에이로봇이 목표로 한 제작 단가이고, 3000만 원은 G1이 마트에서 팔리는 소매가입니다. 제작 단가가 경쟁자의 소매가보다 높다면, 거기에 유통과 마진과 사후 서비스 비용이 붙는 순간 격차는 다시 벌어집니다. "해볼 만하다"는 판단은 이 차이를 메울 다른 무언가가 있을 때만 성립해요. '다음 날 3억 원'이라는 시나리오도 근거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공급망 의존의 위험은 실재하지만, 그 위험의 크기를 보여 주는 숫자는 이 발표에 없습니다.
국산이 정직하게 이길 수 있는 자리
그럼 그 '다른 무언가'는 뭘까요. 저는 대표가 이미 답을 말했다고 봅니다. 고객이 가격보다 먼저 물었다는 두 질문, 얼마나 자주 고장 나는지와 얼마나 빨리 고쳐 주는지입니다. 대표도 한국은 재료를 수급하기 좋고 고객에게 유지보수 지원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덧붙였어요. 이게 자주권보다 훨씬 강한 논리입니다.
생산재를 사는 고객은 스티커 가격이 아니라 총소유비용으로 계산합니다. 로봇이 멈춰 있는 시간만큼 라인이 서고, 부품이 바다를 건너오는 몇 주 동안 사람을 다시 붙여야 합니다. 3000만 원짜리 로봇이 한 번 고장 나 3주를 서 있는 것과 3300만 원짜리 로봇이 이틀 만에 다시 도는 것 사이에서, 계산을 할 줄 아는 공장장은 뒤를 고릅니다. 액추에이터를 직접 만든다는 건 단가만 낮추는 게 아니라 그 부품의 재고와 수리를 직접 쥔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국산 휴머노이드가 내세워야 할 건 '국산이니까 사 달라'가 아니라 '고장 나도 이틀이면 다시 돈다'는 숫자입니다.
물론 대표의 주장이 맞는 조건도 있습니다. 휴머노이드가 실제로 공장의 핵심 생산 설비가 되고, 공급자가 한두 나라로 좁혀진 상태라면 의존 위험은 국가 단위로 따져야 할 문제가 됩니다.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우리가 이미 봐 온 얘기죠. 다만 지금은 휴머노이드가 그 단계에 이르기 전이고, 이 단계에서 자주권을 앞세우면 고객 대신 정부를 설득하는 회사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로봇 도입을 검토하는 제조·물류 현장의 팀에게는 이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견적 비교표에 가격 옆으로 고장 시 복구 시간 약속(SLA)과 핵심 부품의 리드타임을 같은 줄에 넣으세요. 그 줄이 채워지는 순간 5배라는 가격 차이는 다른 모양으로 보일 겁니다. 그리고 국산 로봇 회사라면 그 줄을 자신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내구성과 수리 속도를 먼저 숫자로 증명하는 쪽이, 자주권을 외치는 쪽보다 빨리 고객을 얻는 길이라고 저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