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색 조끼' 하루에 3000장 완판, 배민 디자이너가 배달 뛴 이유

헤드라인

그래픽 디자이너한테 "라이더를 위한 실물 제품을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요. 2년 전 김관우 우아한청년들 라이더디자인TF팀 팀장이 받은 숙제가 정확히 이거였어요. 머릿속엔 딱 한 문장이 떠올랐대요. "밖으로 나가야겠다."

책상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판단한 김 팀장은 팀원들을 끌고 직접 배달을 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라이더 전용 브랜드가 지난해 1월 출범한 '배민 라이더웨어'. 조끼·패딩·헬멧·탑박스 등 19종을 갖췄고, 국내 라이더 사이에선 '가성비 갑'으로 통해요.

iF 디자인 어워드, 라이더 브랜드 최초 수상

iF 디자인 어워드 2026 수상

시장 반응만 좋은 게 아니에요. 지난 2월 배민 라이더웨어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iF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본상을 탔어요. 라이더 전용 브랜드로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수상이에요. 어워드 측 평가는 이거였어요. "사회적 가치와 디자인을 동시구현해 라이더들이 자발적으로 찾는 브랜드로 자리잡은 점이 인상적."

흥미로운 팩트 하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는 전원 실물 제품 개발이 처음이었어요. 웹과 그래픽만 해오던 사람들이 워크웨어 제작이라는 낯선 영역으로 들어간 거예요. 김 팀장의 회고.

"책상 앞에서 벗어나 두발로 뛰며 문제를 찾지 않았다면 라이더분들이 만족할 만한 제품을 결코 만들지 못했을 것"

'답은 언제나 사용자에게 있다'는, 말은 쉬운데 실천은 어려운 원칙. 이 프로젝트는 그 원칙의 실증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배달하는 디자이너'

김관우 팀장

김 팀장은 업계에서 '배달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해요. 지금도 매주 2~3시간씩 민트색 조끼를 입고 배달 중. 그동안 배달한 음식이 수백 건. 회사 입사 후 세운 원칙이 하나 있어요.

"가혹한 날씨를 골라 배달하겠다."

그래야 현장의 고충이 더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맑은 날의 배달과 눈비 맞는 배달은 다른 경험이니까요. 쾌적한 날씨엔 잘 안 보이는 문제가 비 오는 날 도로에서 드러나는 식.

우아한청년들 사무실에 진열된 배민 라이더웨어 전 라인업

대표 제품인 조끼 얘기부터. 2024년 6월 출시된 배민 조끼는 초도 물량 3000장이 당일 완판됐어요. 그 비결을 묻자 김 팀장은 "더 편해야 한다는 원칙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기존 근로용 조끼는 수납 공간은 많았지만 빳빳해서 움직이기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한여름에 입으면 땀도 거의 배출되지 않았죠. 그래서 아웃도어 제품에 쓰이는 나일론 소재를 적용해 신축성과 통기성을 높인 배달 전용 조끼를 개발했어요. 좋은 소재를 쓰고도 가격은 일반 제품보다 합리적으로 출시한 덕에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 관찰에서 나온 판단이에요. 배달 중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지, 여름철 땀이 얼마나 문제인지는 배달 뛰어봐야 알 수 있는 영역.

"지퍼가 왜 힘든지 직접 배달해봐야 보인다"

배달 가방에도 현장 인사이트가 녹아 있어요. 두 가지 사례가 대표적.

자석 개폐 탑박스

첫째, 탑박스. 시중 대부분의 탑박스 개폐부는 지퍼나 벨크로(찍찍이)로 설계돼요. 배민 탑박스는 자석이에요. 하루에도 수십 번 뚜껑을 열고 닫는 라이더의 행동을 고려한 설계. 라이더 안전을 위해 반사 소재도 적용했고요.

확장형 백팩

둘째, 백팩. 용량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가방 하단에 앞으로 빼낼 수 있는 확장형 수납공간을 탑재. 지퍼를 열면 10리터가 늘어나고, 13인치 피자 박스까지 들어가요. 개발 당시 피자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테스트했대요.

"배달 다닐 때 지퍼를 열고 닫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석으로 대체했는데 현장 반응이 좋았어요. 저희 임직원들이 주기적으로 해외 배달 체험을 하러 다니는데 과장 좀 보태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배달 가방'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또 도보 배달을 할 때는 피자를 배달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어요. 가방이 작았거든요. 그래서 가방 하단에 앞으로 빼낼 수 있는 수납 공간을 만들어 피자까지 실을 수 있게 했어요. 제 경험으론 확장형 백팩을 쓰면 피자를 포함해 3개 메뉴 묶음배달까지도 가능합니다."

지퍼를 여닫는 게 힘들다는 건, 책상에선 절대 안 보이는 문제예요. 두 발로 뛰어야만 잡히는 포인트.

패딩도 김 팀장의 '최애템' 중 하나. 고급 소재로 배달 중 맞바람을 차단하는 데 집중. 김 팀장 왈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이 정도 품질의 패딩을 사지는 못할 것."

마케팅 0원으로 5만 개 판 비결

국내 라이더 사이에서 배민 라이더웨어는 '품질 좋고 저렴한 제품'으로 입소문이 났어요. 리뷰 이벤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별점 평균 4.5점 이상. 2025년 말 기준 누적 판매량은 5만 개 이상 — 웬만한 베스트셀러 신발 1년치에 맞먹는 수치예요. 마케팅 없이 오직 제품력으로 달성한 성과.

시장 보급 전략은 특별하지 않아요. 두 가지 기본 원칙의 철저한 실행. 합리적인 가격, 시장 조사에 기반한 꾸준한 품질 개선. 특히 가격은 무조건 동일 품질 제품보다 낮게. 국내 설계 → 해외 공장 발주 방식으로 단가를 낮췄어요.

제품 개선도 실전 기반. 직접 배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피 트럭 행사처럼 라이더들이 모이는 현장에 나가 인터뷰하며 혹서기·혹한기 고충을 수집, 발주 때마다 반영.

D자형 고리로 개선된 조끼

한 예가 조끼 자석 개선. 원래 조끼는 자석이 달린 채로 출시됐어요. 폰 뒷면에 자석을 부착해 매다는 라이더가 많다는 관찰에서 나온 아이디어. 그런데 후기는 예상과 달랐어요. 선호 위치가 사람마다 다르고, 폰에 붙은 자석의 극이 저마다 다르다는 거예요. 오히려 불편하다는 피드백. 현재는 원하는 곳에 자석을 걸 수 있도록 D자형 고리를 탑재한 개량품으로 판매 중. 현장 피드백에서 바로 제품으로 이어진 사례예요.

짐대 확장 거치대

이륜차용 짐대 확장 거치대도 자체 제작. 탑박스를 출시했더니 라이더들이 별도의 짐대를 추가 구매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탑박스 소재에 따라 호환 짐대가 달랐거든요. 그래서 알루미늄부터 플라스틱까지 다양한 소재와 호환되면서도 가격 부담을 낮춘 범용 짐대를 출시. 시중가의 3분의 1 수준이에요. 소비자가 배민 라이더웨어 제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결정.

경쟁사와 싸우지 않고 협력했다

시장 안착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에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탓에 제품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고, 기존 경쟁 브랜드의 강한 견제도 받았어요. 김 팀장의 해법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어요. 경쟁이 아니라 협력.

"이미 시장에는 제품별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었어요. 배달 가방에는 어디, 우의에는 어디 이런 식으로요. 설계도를 들고 이분들을 찾아가 제품을 생산해달라고 말씀드렸죠. 저희 입장에선 제품의 품질을 높일 수 있고, 이분들께는 브랜드를 알려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메인 제품은 배달의민족에서 판매하되 관련 소모품은 모두 협력사로 넘기는 구조. 결과는 윈윈이었어요. 협력사 이름이 품질 보증이 됐고, 배민 라이더웨어의 인기로 협력사 웹사이트 유입량과 매출도 개선. 지금은 협력사가 먼저 제품 아이디어를 줄 만큼 긴밀한 관계예요.

정리하면 이렇게 돼요. 직접 배달을 뛰며 시안을 만들고, 방어적이던 경쟁사를 설득해 생산에 끌어들이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 소싱까지 디자이너가 직접. 그래픽만 다루던 팀이 실물 제품 공급망 전체를 설계한 셈이에요.

돈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 — "마이너스예요"

그럼 우아한청년들은 왜 이렇게까지 해서 배민 라이더웨어를 시장에 안착시키려 했을까요. 수익? 아니에요.

"우아한청년들의 미션은 '세상 모든 것이 식지 않도록'이에요. 그리고 물류의 핵심은 결국 최종 배송을 책임져주는 라이더에 있죠.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라이더분들의 작업복 품질이 좋지 않았어요. 조금 괜찮다 싶은 브랜드는 너무 비쌌죠. 작업복이 편의성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고, 최소한의 금액대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낸 제품을 제공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게 배민 라이더웨어가 출범한 목적이에요. 돈 벌려고 시작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마이너스래요. 기업이 직접 이렇게 말하는 건 흔치 않아요.)

'왜 굳이 실물 제품까지 만들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김 팀장은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내걸어도 온라인으로만 전달하면 말에 불과할 뿐"이라고 답해요. "우리의 비전을 고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려면 체감할 수 있는 실물 제품이 필요했다"는 거죠. 라이더 전용 제품은 배달의민족의 미션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 그래서 무엇보다 제품이 널리 보급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파격적인 가격과 품질 원칙을 고수했던 것.

민트색 배달 용품에 대한 신뢰도 설문

이 의도가 데이터로도 나타나요. 지난해 9월 우아한청년들과 오픈서베이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민트색 배달 용품에 대해 "믿고 받을 수 있다"고 답했어요. 김 팀장의 해석.

"배달 용품이 소비자 신뢰 형성은 물론, 전체 배달 경험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임을 보여주는 결과."

현재는 오염에 더 강한 민트색 소재, 보온성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춘 EPP(고강도·경량·친환경 플라스틱) 소재의 탑박스 등을 개발 중. iF 수상은 시작에 가깝다고 해요.

그래서 남은 교훈

배민 라이더웨어 프로젝트는 기존 디자인 작업과 여러모로 달랐어요. 문제 발견만 해도 웹처럼 클릭률·체류율 같은 정량 지표가 아니라, 배달 체험부터 환경 테스트까지 훨씬 복잡한 과정.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남는 교훈도 분명해요.

"직접 배달해보지 않았다면, 또 라이더 분들을 현장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주머니 위치나 봉제 구조의 미묘한 차이를 알지 못했을 거예요. 이는 디지털 프로젝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컴퓨터에서 할지라도 결국 실제 사용자 환경을 이해하는 과정이 제품 완성도에 직결된다는 걸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책상에서만 디자인하면 안 된다. 단순한 얘기. 그런데 이 단순한 얘기를 조끼 하나, 탑박스 하나, 자석 위치 하나로 증명한 게 이 프로젝트의 무게예요. 브랜드가 글로벌 어워드까지 간 이유도 결국 그 무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