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명이 쓰는 ChatGPT를 향해 딥마인드 CEO가 던진 한마디
![]()
"ChatGPT가 AI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이건 동네 커뮤니티 댓글이 아니에요.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한 말이에요. 주간 활성 사용자 9억 명을 돌파한, 대중에게 AI의 동의어가 된 서비스를 정면으로 겨냥한 거죠.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세상에 공개된 날 밤, 허사비스는 자신의 전기를 집필하던 작가 세바스찬 말라비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적이 우리 앞마당에 탱크를 몰고 들어왔다"고요. 그 탱크는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물러나지 않았어요. 아니, 오히려 도시 전체를 점령한 것처럼 보이는데, 허사비스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어요. 챗봇은 AI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덜 중요한 일이라고. 9억 명이 매주 쓰는 서비스를 두고 이런 말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근거가 있어야겠죠.
근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가 중요하잖아요.
체스 신동이 AI를 만들기까지 — 허사비스라는 사람
전기 작가 말라비가 허사비스를 정의한 문장이 꽤 날카로워요. "샘 올트먼은 뛰어난 기업가지만 과학자가 아닙니다. 제프리 힌튼은 뛰어난 과학자지만 기업가가 아닙니다. 허사비스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인물. 솔직히 흔치 않죠.

이력을 보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예요. 5살에 체스를 시작해서 영국 최고의 유소년 선수가 됐고, 10대에 게임 회사를 창업해 수백만 달러짜리 인수 제안을 받았어요. 여기서 그만둘 수 있었는데, 안 그랬어요. 케임브리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그 다음엔 신경과학 박사 학위까지 땄거든요. 이유는 단 하나, 인간 두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진짜 지능을 만들겠다는 목표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AI가 고양이 한 마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2010년에 딥마인드를 세웠어요.
이 사람이 "챗봇은 AI의 가장 덜 중요한 형태"라고 할 때, 그냥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과학자로서의 깊이와 기업가로서의 실행력을 동시에 증명한 사람이거든요. 두뇌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겠다고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 챗봇이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알파폴드는 조용히 노벨상을 탔다
허사비스의 주장은 확고해요. ChatGPT가 아이폰에 버금가는 혁신으로 평가받지만, 만약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었다면 AI를 연구실 안에 10년, 어쩌면 20년 더 묵혀뒀을 거라고요. 솔직히 좀 놀라운 발언이에요. 세상이 열광하는 걸 10년 더 숨겨뒀겠다니. 근데 이유를 들으면 납득이 돼요. 언어 모델의 갑작스러운 부상이 AI가 가진 진짜 가능성으로부터 세상의 시선을 분산시켰다는 판단이거든요. 텍스트를 생성하고 질문에 답하는 챗봇, 이건 AI의 능력 중 가시성이 가장 높은 형태일 뿐이라는 거예요.

지난 3년간 세상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요. 챗봇 답변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환각이 줄었는지, 컨텍스트 창은 얼마나 길어졌는지. 이게 AI 기술력의 척도처럼 여겨졌잖아요. 그 사이 딥마인드는 뭘 하고 있었냐면, 인류가 50년간 풀지 못한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했어요. 알파폴드로요.

노벨화학상. '아주 조용히' 거머쥐었어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대화창은 하나도 없었지만, 신약 개발의 속도를 수십 배 앞당기며 인류의 삶에 실질적인 기여를 해낸 거예요. 텍스트 생성 챗봇이 소셜 미디어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동안, 딥마인드는 진짜 문제를 풀고 있었던 셈이죠.
허사비스가 "AI가 가장 필요한 곳은 과학과 의학"이라고 말하는 건, 이런 실적이 뒷받침되니까 빈말이 아닌 거죠. (알파폴드 없이 이 발언 했으면 그냥 질투로 들렸을 거예요.)
9억 명의 챗봇, 수익은 어디에
너무 가시적인 성과가 잘 보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FOMO에 시달렸어요. 마치 AI가 세상을 금방이라도 뒤집을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자, 그러면 ChatGPT로 대표되는 챗봇형 AI는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a16z가 분석한 엔터프라이즈 AI 도입 현황을 보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꽤 커요. 실제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곳은 코딩, 법률, 고객 상담 등 일부 분야에 불과하거든요. 그마저도 코딩 분야를 빼면 뚜렷한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AI 산업이 아직 초기 투자 단계라서 그렇다고 옹호하지만요.

AI 챗봇 모델을 훈련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에요. 어떤 분야라도 이 정도의 투자금이 들어갔다면 이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성과를 냈을 거라는 비판이 나와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거죠.
동시에 이 거대한 비용 압박은 결국 가장 원초적인 수익 모델로 내몰고 있어요. 광고.
올해 초 ChatGPT에 광고가 도입될 수 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허사비스가 꼬집은 지점이 정확했어요. "AI 어시스턴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인데, 광고가 그 신뢰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미나이에는 광고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요.

여기서 잠깐 딴 얘기 같지만요. 우리는 검색 엔진에 광고가 붙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잖아요. 검색 결과는 기계적인 정보 나열이니까, 정보와 광고를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광고가 껴 있어도 크게 거부감이 없어요.
근데 AI는 다릅니다. 사용자는 AI가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엄선된 결과를 제공한다고 믿어요. 그런 AI가 광고주의 입김이 들어간 편향된 답변을 내놓는 순간, 미묘한 불쾌감과 함께 AI 전체를 불신하게 될 거예요. 검색 광고는 참고 쓸 수 있지만, 내 비서가 뒤에서 돈을 받고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그를 믿을 수 있는가"
AI 결과에 대한 신뢰 문제는, 거대한 기술의 방향키를 쥔 리더에 대한 신뢰 문제로도 자연스럽게 번져요.
The New Yorker가 최근 탐사보도를 냈어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었죠. "Sam Altman May Control Our Future — Can He Be Trusted?" 직역하면 "샘 올트먼이 우리의 미래를 통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를 믿을 수 있는가?" 꽤 도발적이잖아요. 이 기사는 OpenAI의 비영리적 창립 철학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AI 안전에 대한 담론이 제품 출시와 매출 논리에 어떻게 밀려났는지를 심층 분석했어요. AGI에 준하는 강력한 AI를 만들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사람이 올트먼인데, 과연 그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인 거죠.
이 대목에서 문득 알파고가 떠올라요. 2016년 이세돌과의 대국. 3연승을 달리던 알파고가 4국에서 일격을 당했잖아요. 신의 한 수로 불리는 78수.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CEO였으면 전승을 거두지 못한 기술적 결함에 분노하거나 아쉬워했을 텐데, 딥마인드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해요. 여전히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이 통한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이었어요. 그리고 기술이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물론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어요. 이벤트 경기였고요. 근데 78수가 놓였을 때 개발자들의 반응은 진짜 '찐'으로 보였거든요. (유튜브에서 그 장면 다시 보면 아직도 소름이에요.) 기술이 졌을 때 안도하는 사람과, 기술이 이겼을 때만 기뻐하는 사람. 그 차이가 결국 AI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우리가 열광하는 것의 정체
어쩌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가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정말 AI를 쓰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일까요.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건 AI의 본질이 아니라,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일 수 있어요. 9억 명이 매주 접속하는 그 화려한 대화창 말이에요.
허사비스는 그 뒤편에서 단백질을 접고 있었어요. 누가 맞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노벨상은 챗봇이 아니라 알파폴드에 갔다는 사실. 꽤 많은 걸 말해주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