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셋집 커튼부터 친구 생일 선물까지, AI가 골라준 일주일

헤드라인

"월셋집이라 못을 박을 수 없는데 여름 커튼을 달고 싶어." 이 한 문장을 네이버 쇼핑 앱에 던졌더니, AI가 소재부터 설치 방식까지 줄줄이 풀어주고 가격대별로 상품을 골라줬어요. AI가 사람을 대신해 상품을 찾고, 추천하고, 결제까지 잇는 '에이전틱 커머스(Agentic Commerce)'가 진짜 손에 잡히는 단계로 넘어온 거예요.

해외는 이미 한발 앞서 갔어요. 지난달 아마존은 AI 쇼핑 가이드 '루퍼스(Rufus)'를 대화형 에이전트 '알렉사 포 쇼핑(Alexa for Shopping)'으로 통합 개편하면서 탐색부터 구매까지 한 줄로 꿰었고, 구글도 결제까지 끝내는 '유니버설 카트'를 내놨죠. 국내라고 가만있을 리 없고요. 빅테크 2강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올해를 기점으로 관련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판을 깔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두 회사 걸 직접 일주일간 써봤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결이 완전히 달랐어요.

둘 다 결제가 보편화돼 있는데, 출발점이 정반대

양사가 이 시장에 돈을 쏟는 이유는 비슷해요. 국내 플랫폼은 간편 결제가 이미 깔려 있고, 검색·메신저·커머스·예약이 촘촘히 얽혀 있는 데다, 두 회사 모두 대규모 소비자 데이터를 쥐고 있거든요.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네이버페이 결제 이력에서 구매 패턴을,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선물하기에서 관계 기반 소비 패턴을 차곡차곡 모아왔어요. 에이전틱 커머스를 정교하게 굴릴 연료가 이미 탱크에 들어 있는 셈이죠.

연료는 같은데 시동 거는 방식이 정반대예요. 네이버는 쇼핑 전용 앱 안에서, 카카오는 메신저 대화 안에서 이걸 구현했어요. 사용자가 첫발을 딛는 자리가 다르니, 진입 경로도, 추천에 쓰는 데이터도, 서비스를 넓히는 방향도 죄다 갈라졌고요.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데 입구가 다른 거예요. 그리고 이 입구 차이가 단순히 UI 취향 문제로 끝나지 않아요. 사용자가 어디서 처음 AI를 만나느냐가, 그 사람이 AI를 얼마나 믿고 지갑을 여는지까지 끌고 가거든요. 직접 써보니 그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선명했어요.

네이버는 한 앱 안에서 끝낸다 (대신 글이 좀 많아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네플스) 앱의 AI 쇼핑 에이전트한테 앞의 커튼 질문을 던졌더니, 소재·설치 방식·길이 같은 고려사항을 먼저 짚어줬어요. 그다음 거기 맞는 상품군을 추천하고, 각 상품의 스펙과 구매 후기를 종합한 설명에 할인 혜택과 설치 팁까지 붙여줬죠. 가격대별로 추천해달라니까 저·중·고가 순으로 딱 3개를 제안하더라고요.

추천 목록에서 하나를 누르니 바로 구매 가능한 네이버스토어 상세 페이지로 넘어갔어요.

네플스 앱 쇼핑 에이전트의 답변 화면

탐색에서 구매까지, 앱 하나에서 끊김 없이 흘러갔어요. 추천 상품을 클릭하면 곧장 결제 화면이니까요.

추천 상품을 클릭해 바로 구매할 수 있다

쓰면서 느낀 네이버의 색깔은 분명했어요. 에이전틱 커머스를 쓰려면 별도 쇼핑 앱에 들어가야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탐색·비교·구매가 한 앱에서 완결돼요. 추천 근거가 스마트스토어 상품·리뷰 같은 커머스 데이터에 블로그·카페까지 쌓인 자체 데이터를 얹으니, 예전에 블로그 리뷰랑 쇼핑 탭을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하던 시간이 확 줄었고요. 커튼 하나 추천에도 그냥 상품만 던지는 게 아니라 할인 혜택이랑 설치 팁까지 같이 붙여주는 게, 검색하던 사람 입장에선 꽤 든든했어요.

다만 단점도 또렷했어요. 추천은 몇 개 안 되는데 상품마다 텍스트가 너무 많아서, 다 읽다 보면 슬슬 지쳤거든요. 정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넘쳐서 피곤한 쪽. (스크롤이 길어요.) 빠르게 사고 싶은 사람한테는 이게 오히려 마찰이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카카오는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건다

카카오는 전부 메신저 안에서 벌어졌어요. 생활형 AI '카나나(Kanana)'한테 "가장 가까운 날짜의 친구 생일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일주일 내 생일인 지인 리스트를 쫙 뽑아줬고, 이어서 "3만원대 선물을 추천해달라"니까 '선물하기'와 연동된 맞춤 상품군을 내놨어요.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이 좀 묘했어요. 다른 지인 대화방에 "3만원대 밀키트를 사고 싶다"고 적었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3만원대 밀키트를 추천해드린다"는 카나나의 '선톡'이 왔거든요. 대화 맥락을 읽고 먼저 들이민 거예요. 편하긴 한데, 솔직히 살짝 섬뜩했어요.

카나나 대화 화면. AI가 추천한 3만원대 생일 선물

'챗GPT 포 카카오'는 또 다른 길이었어요. 내부 AI 에이전트 '카카오툴즈'를 켠 채 "지성 남자 피부에 적합한 선크림 추천해줘"라고 입력하니, 올리브영에서 파는 남성용 선크림 리스트를 줬어요. 각 링크가 올리브영 공식 판매 페이지로 이어져서 바로 구매까지 됐고요.

올리브영과 연동된 챗GPT 포 카카오의 카카오툴즈

카카오의 가장 큰 강점은 진입 장벽이 거의 없다는 거였어요. 쇼핑 앱을 따로 열 필요 없이 대화 도중에 그냥 써졌으니까요. 보유한 관계망 정보와 대화 데이터가 AI를 더 똑똑하게 굴리는 토대가 되기도 했고요. 근데 사적인 대화 공간에 AI가 수시로 끼어든다는 건 양날의 검이에요. 성향에 따라 프라이버시 침해로 느낄 수 있고, 선톡 피로감을 어떻게 다룰지는 분명한 숙제였어요.

네이버의 숫자는 2배, 그 뒤엔 독립 앱 전략

네이버 전략은 한마디로 쇼핑을 따로 떼어내고 그 안에서 AI를 키우는 거예요. 출발점은 작년에 나온 쇼핑 전용 네플스 앱이었어요. 기존 네이버 앱 속 쇼핑이 최저가 찾으려고 들르는 목적형 공간이었다면, 네플스 앱은 AI 쇼핑 가이드로 취향과 상황에 맞춰 상품과 혜택을 짜주는 맞춤형 공간으로 설계됐죠.

성적표가 꽤 좋았어요. 네이버에 따르면 작년 6월 기준, 네플스 앱의 일평균 방문자당 구매 횟수와 구매 전환율이 기존 네이버 앱의 추천쇼핑·가격비교 서비스보다 2배 이상 높았어요. 재구매와 정기구독 같은 단골 소비도 크게 늘었고요. AI가 붙으니까 사람들이 더 자주, 더 깊이 샀다는 얘기죠.

AI 쇼핑 에이전트 작동 화면. 지난 2월 베타 출시 후 업데이트 중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에이전틱 커머스로 넘어갔어요. 지난 2월 네플스 앱에 'AI 쇼핑 에이전트' 베타를 올리면서요. 종전 'AI 쇼핑 가이드'가 검색하면 구매 정보를 요약해주는 보조 역할이었다면, 'AI 쇼핑 에이전트'는 상품 정보 요약과 리뷰 분석으로 복잡한 탐색을 대신 끌어올려요. 대화로 목적을 캐묻고, 스펙과 후기를 분석해 최적 상품까지 제안하죠. 출시 3개월 만인 이달 초엔 AI가 먼저 말을 거는 방식으로 업데이트됐어요. 상품 검색 도구를 넘어 다음 행동까지 권하는 실행형으로 진화 중이라는 게 회사 설명이고요.

네이버는 별도 쇼핑 앱에서 AI 에이전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지난 1일 이정태 네이버 Shopping Search&AI 리더는 "네이버가 축적해 온 쇼핑 데이터와 AI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사용자들의 쇼핑 방식과 취향에 가장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일상 속에서 더 스마트한 에이전틱 쇼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술을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했어요. 아직 베타지만 일상에 안착시키는 게 목표라는 거죠.

카카오의 5000만, 그리고 두 갈래 길

카카오는 별도 공간을 새로 파는 대신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에 AI 커머스를 얹는 길을 골랐어요.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메신저를 넘어 5000만 이용자가 쓰는 에이전틱 AI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죠. 사용자를 쇼핑 공간에 붙잡아두기보다, 매일 오가는 대화 동선에 커머스를 슬쩍 끼워 넣는 그림이에요.

전개는 두 갈래예요. 첫째가 자체 개발한 생활형 AI '카나나'. 카카오톡에서 장소 검색이나 일정 등록을 자연스럽게 잇던 수준을 넘어, 올해 초부터 내부 쇼핑 플랫폼 '선물하기'와 연동됐어요. 대화 맥락이나 친구 생일·기념일 같은 관계 정보를 읽어 '선톡'으로 상품을 들이밀고 결제까지 잇는 거고요. 둘째는 카카오톡과 오픈AI 챗GPT를 묶은 '챗GPT 포 카카오(ChatGPT for Kakao)'. 작년 10월 나온 서비스로, 대화창에 깔린 카카오툴즈가 외부 파트너와 직결돼요. 사용자 질문에 맞는 상품을 파는 외부 사업자 링크를 가져와 답변으로 내주는 식이죠.

카카오툴즈는 챗GPT 포 카카오의 AI 에이전트로, 외부 파트너사와 연동된다

확장 속도를 보면 카카오의 노림수가 읽혀요. 파트너사를 계속 늘려서 지난 3월엔 올리브영, 무신사, 현대백화점을 추가했거든요. 당시 유용하 카카오 AI 커넥트 성과리더는 "AI 에이전트 생태계의 꾸준한 확장을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성이 풍부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할 계획"이라며 여러 산업군과 파트너십을 맺겠다고 했어요. 자기 몰을 키우는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는 남의 몰을 끌어들이는 길을 가는 거예요.

결국 발목 잡는 건 둘 다 '신뢰'

접점도, 확장 방식도 이렇게 다른데, 풀어야 할 숙제는 똑같았어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소비자 '신뢰' 확보가 먼저라고 해요.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에이전틱 커머스를 본격화하려면 무엇보다 소비자가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보안이 충분히 검증됐는지, AI가 사용자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지가 앞으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어요. 결제 단계 보안과 의도 해석의 정확성, 이 둘이 신뢰의 잣대라는 거죠.

이게 그냥 걱정으로 끝나는 얘기가 아니에요. 오픈AI는 작년 9월 챗GPT 안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즉시 결제(Instant Checkout)'를 선보였는데, 6개월 만에 접었어요. 검색·비교는 활발했지만 AI에 결제를 맡기는 데 대한 불안과, 애플페이 같은 기존 간편결제 습관의 벽을 못 넘었거든요. 탐색은 맡겨도 지갑은 안 맡긴다. 사람들의 선택이 그랬어요.

작년 9월 공개된 챗GPT '즉시 결제'. 소비자 불신으로 6개월 만에 종료됐다

신뢰 문제는 산업의 외연 확장과도 맞닿아요. 패트릭 스토리 비자 코리아 사장은 "신뢰는 에이전틱 커머스의 필수 조건일 뿐 아니라, K-상품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한국 기업의 지속 가능한 해외 성장으로 연결하는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했죠. 여기에 소비 윤리 리스크까지 얹혀요. 삼정KPMG는 보고서에서 "AI 에이전트가 상품 탐색과 비교, 선택 과정을 상당 부분 대행하면서 구매에 이르는 과정의 마찰이 줄어들게 된다"며 "이는 소비 편의성을 높이는 한편 소비자가 소비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기회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어요.

일주일을 써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진입 장벽만 보면 카카오가 영리해요. 앱을 따로 열 이유 자체를 없앴으니까요. 근데 바로 그 강점이 신뢰 앞에선 가장 큰 약점이 돼요. 사적인 대화방에 먼저 끼어드는 선톡은, 결제를 못 미더워하는 사람한테 한 번 더 경계심을 심거든요. 네이버는 들어오게 만드는 게 어렵고, 카카오는 들어와 있는 걸 신뢰받게 만드는 게 어려운 셈. 어느 쪽이든 지갑을 여는 마지막 한 발은 아직 사람 몫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