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Bio는 무엇을 팔아서 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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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벤처스의 TechBio 정리에는 좋은 기준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기업의 성격을 가르는 건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자산으로 삼고, 어떻게 돈을 버느냐"라는 문장이죠. 아쉬운 건 정작 글이 이 기준을 끝까지 쓰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지도는 회사들이 신약개발의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하느냐로 그려져 있거든요. 저는 그 기준을 글보다 한 걸음 더 밀어 보려고 합니다. 돈 버는 방식으로 줄을 다시 세우면, TechBio라는 한 이름 아래 꽤 다른 회사들이 섞여 있다는 게 드러나니까요.
읽기 전에 염두에 둘 것도 하나 있습니다. 이 지도를 그린 곳이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이라는 점입니다. 투자자가 "신약개발의 모든 단계가 시장이 된다"고 쓰는 건 자연스럽고, 틀린 말도 아니에요. 지도가 넓을수록 투자 논리도 넓어질 뿐이죠. 글에는 회사 이름이 열 개 나오지만 매출 규모나 실패 사례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시장의 존재를 보여 주는 글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Hybrid라는 이름이 고백하는 것
Biotech와 TechBio를 가르는 비교표 자체는 깔끔합니다.

제가 오래 본 줄은 "가치가 커지는 방식"입니다. Biotech는 후보물질이 임상 단계를 통과할수록, TechBio는 더 많은 연구와 신약개발에 기술이 쓰일수록 가치가 커집니다. 한쪽은 성패가 갈리는 사건에 걸고, 다른 쪽은 사용량에 거는 셈이죠. 개발자에게는 익숙한 대비예요. 히트작 하나에 회사를 거는 게임 스튜디오와, 게임이 몇 개 나오든 엔진 사용료를 받는 엔진 회사의 차이와 닮았거든요. 독성 예측 AI를 파는 가상의 B사가 항암제를 만드는 고객과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고객 모두에게서 돈을 받는 장면이 바로 그 엔진 쪽입니다.
글은 TechBio를 다시 둘로 나눕니다. 기술 자체를 여러 고객에게 파는 Pure TechBio와, 기술을 팔면서 같은 기술로 자체 신약까지 만드는 Hybrid TechBio. 그리고 Hybrid에 대해 이렇게 씁니다. "자체 신약이 성공하면 기술 판매보다 큰 가치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글 전체에서 가장 솔직한 대목이라고 봐요. 기술 판매가 충분히 큰 사업이라면 굳이 임상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습니다. 기술을 팔면서 직접 신약도 개발하는 곳이 많다는 건, 제약사에 도구를 파는 사업에 천장이 있다고 판단한 회사가 많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글의 정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결론도 나옵니다. 자체 파이프라인이 회사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간, 그 회사는 약이 자산인 Biotech로 평가받게 되죠. 기술 매출은 임상까지 버티게 해 주는 운영 자금이 되고요. Hybrid는 TechBio의 한 유형이라기보다 TechBio와 Biotech 사이를 오가는 중간 상태에 가깝습니다.
단계 지도 대신 매출 지도
글이 보여 주는 영역은 네 단계로 나뉩니다.

발굴·설계, 연구·실험, 예측·검증, 임상. 단계로 보면 모두 비슷한 기술 회사입니다. 그런데 매출 1원이 늘 때 무엇이 같이 늘어나는지로 다시 나누면 무리가 달라집니다.
소프트웨어에 가까운 회사들이 먼저 보입니다. Inductive Bio는 분자 구조만 보고 ADMET 특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Edison Scientific은 연구 질문을 받아 문헌과 데이터를 스스로 탐색하는 Kosmos를, Tamarind Bio는 여러 바이오 AI 모델을 클라우드에서 바로 돌리는 환경을 팝니다. 고객이 늘어도 사람이 비례해서 늘 필요는 없는, "반복해서 쓰는 기술"이라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 무리입니다.
이름은 기술 회사인데 매출의 성격은 대행에 가까운 쪽도 있습니다. Lindus Health는 임상시험의 설계부터 운영까지를 기술 기반으로 대행하고, Adaptyv Bio는 고객이 설계한 단백질을 자동화 실험실에서 합성하고 테스트합니다. 기술이 원가를 낮춰 주는 건 분명하지만, 일감이 늘면 실험 장비와 운영 인력도 함께 늘어나요. 이런 회사를 소프트웨어 회사의 잣대로 보면 실망하고, 서비스 회사의 잣대로 보면 꽤 좋은 회사일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가 제가 가장 오래 버틸 거라고 보는 무리입니다. 쓸수록 남이 갖기 어려운 실험 데이터가 쌓이는 회사들이요. Tahoe Therapeutics는 세포 하나하나의 상태를 측정한 대규모 단일세포 데이터를 쌓아 약물 반응을 모델링하고, Quris AI는 인간 세포로 만든 장기칩에서 얻은 데이터로 약물 안전성을 평가합니다. 국내의 포트래이가 암 조직 속 세포의 위치와 상호작용까지 담은 공간전사체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것도 같은 줄에 놓을 수 있고요. Adaptyv Bio도 테스트 결과를 데이터로 돌려주고 그 데이터가 다시 AI 모델 개선에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발을 이쪽에 걸치고 있죠. 같은 실험실 대행이라도 결과가 고객 손에만 남으면 용역이고, 회사의 모델에도 쌓이면 자산이 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모델은 공개되고 따라잡히지만 특정 조건에서 반복해 돌린 실험 결과는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공개된 모델을 편하게 돌려 주는 실행 환경은 쓸수록 쌓이는 게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편의는 복제되기 쉬우니까요.
지갑이 가장 두꺼운 곳
매출 지도를 그렸으면 다음 질문은 누가 돈을 내느냐입니다. 같은 제약사라도 단계마다 지갑의 두께가 다르거든요.
임상은 글 스스로 신약개발에서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 단계라고 짚은 곳입니다. 설계가 조금만 어긋나도 환자 모집이 늦어지거나 효과를 입증하지 못할 수 있다면, 그 위험을 줄여 주는 도구에는 돈을 낼 이유가 분명하죠. 임상시험 운영을 맡는 Lindus Health나, 환자 특성과 치료제 조합에 따른 결과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QuantHealth가 서 있는 자리가 그렇습니다. QuantHealth의 가상 환자는 실제 임상을 대신하지 않고 설계를 고르는 데 쓰인다는 설명도 영업에는 오히려 유리해 보여요. 규제가 요구하는 절차를 건드리지 않고 기존 예산 안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연구 단계의 도구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Tamarind Bio가 풀겠다는 문제는 고성능 GPU와 대용량 데이터 처리 환경, 모델을 설치하고 관리할 인력을 갖추기 어려운 작은 바이오 기업과 연구실의 진입장벽이에요. 진입장벽을 낮춰 주는 도구는 고객의 지갑도 얇은 경우가 많습니다. 쓰는 사람이 늘어도 한 곳이 내는 돈이 작으면, 소프트웨어형의 장점인 반복이 매출 규모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죠.
예측·검증 단계의 도구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이 회사들이 파는 건 무엇을 실험하고 다음 단계로 가져갈지 판단하는 근거, 다시 말해 일어나지 않은 실패입니다. 독성 문제로 중단될 뻔한 후보를 미리 걸러 냈다는 성과는 숫자로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막아 준 사고는 보고서에 남지 않으니까요. 효과가 분명해도 구매 결정이 느린 시장일 수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무리일수록 데이터가 쌓이는 쪽인지가 더 중요해진다고 봐요. 판매가 느리면 버티는 동안 무엇이 남는지가 회사의 가치를 정하니까요.
'반복'은 고객이 정한다
TechBio의 정의는 여러 신약개발에 반복해서 쓰이는 기술입니다. 이 반복이 저절로 일어나는지는 따져 볼 만해요. 고객은 제약사와 연구기관, 숫자가 많지 않고 하나하나가 큰 구매자입니다. 그런 고객은 자기 데이터와 자기 프로세스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죠. Causaly가 공개된 생의학 지식과 제약사 내부 데이터를 연결해 준다는 대목만 봐도, 고객마다 다른 내부 데이터를 붙이는 일이 제품의 일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수의 큰 고객에게 맞춤 연동을 반복하다가 소프트웨어 회사가 어느새 프로젝트 회사가 되는 건 이 업계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라면 TechBio 회사를 볼 때 두 가지를 먼저 묻겠습니다. 다음 고객을 받으려면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고객이 쓸 때마다 회사 쪽에는 무엇이 남는가.
신약개발의 모든 단계가 시장이 된다는 글의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시장이 된다는 것과 좋은 사업이 된다는 건 다른 문제고, 그 차이를 가르는 건 단계가 아니라 매출의 모양이라고 봐요. 쓸수록 실험 데이터가 쌓이는 TechBio는 이름값을 하고, 대행형은 좋은 서비스 회사가 될 수 있고, 파이프라인에 무게가 실린 Hybrid는 결국 임상 결과로 값이 매겨집니다. 셋을 한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투자자도, 그 회사로 옮겨 가려는 개발자도 엉뚱한 잣대를 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