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를 만든 건 병원이 아니었다

회사의 비누를 만드는 사람들

좋은 비유는 쓴 사람이 멈춘 곳보다 한 걸음 더 갑니다. AI로 누구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에 개발자의 일이 어떻게 갈라질지를 위생의 역사에 빗댄 이 글이 그런 경우고요. 저는 이 비유를 끝까지 따라가면 결론이 조금 달라진다고 봐요. 개발자가 '회사의 비누'를 만든다는 대목에서요.

전제에는 동의합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업무 도구를 직접 만들어 쓰는 편함을 맛본 사람들을 다시 개발팀 티켓 큐 앞에 줄 세울 방법은 없어요. 비누가 흔해진 뒤에도 위생을 다루는 일이 사라지지 않고 여러 갈래로 늘었다는 관찰도 맞고요. 1860년대 영국 글래스고의 한 병원에서 절단 수술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감염으로 죽다가 소독을 시작하자 그 비율이 15%로 떨어졌고, 지금은 손 씻기를 가르치는 것만으로 설사병이 23-40% 줄어든다는 숫자는 도구가 전문가 아닌 사람 손에 들어갔을 때의 위력을 잘 보여주죠.

레버는 식료품 가게 출신이었다

문제는 그 비누를 누가 만들었느냐입니다. 이 글이 직접 든 역사를 보면, 비누세가 사라진 뒤 비누를 무게로 달아 파는 대신 한 장씩 잘라 포장해 팔기 시작한 사람은 아버지의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던 윌리엄 레버였습니다. 의사도 병원도 아니었죠. 그 장사가 도브와 바세린을 파는 유니레버가 됐고, 2025년 한 해 매출만 약 78조 원입니다. 비누는 병원 안에서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병원 밖에서 사 오는 물건이 됐어요.

이 글이 정의한 회사의 비누를 다시 보면 같은 일이 벌어질 게 보입니다. 회사 데이터에 안전하게 연결되고, 실수해도 되돌릴 수 있고, 매일 써도 비용이 부담되지 않는 AI 환경. 이건 AI 플랫폼을 파는 쪽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약속과 거의 겹치거든요. 수백 명 규모 회사의 개발팀이 이걸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면 병원이 비누 공장을 차리는 꼴이 됩니다. 불가능하진 않지만 대개는 사 오는 편이 싸고, 더 빨리 좋아지죠. 비누세가 없어지자 산업이 커졌다는 대목도 같은 쪽을 가리킵니다. 값을 내린 건 병원이 아니라 제도와 시장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내 개발자에게 남는 비누 쪽 일은 제조보다 배관에 가깝다고 봐요. 어떤 비누를 들여올지, 그 비누가 어느 데이터에 닿게 할지, 되돌리기가 실제로 어디까지 되는지를 정하는 일. 덜 멋있어도 이게 현실적인 몫입니다.

감염관리 간호사는 왜 1959년에야 생겼을까

비유의 나머지 절반, 비누로도 못 막는 사고를 맡는 사람 쪽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러 프로그램이 같은 데이터를 바꾸기 시작하면 어느 값이 맞는지부터 헷갈리고, 한 곳의 오류가 어디까지 번졌는지 알기 어렵고, 복구 순서를 누군가 정해야 한다는 진단은 운영을 해본 사람이면 바로 알아듣는 장면이죠. 이건 벤더가 팔 수 없습니다. 영업팀이 만든 자동화와 재무팀이 만든 스크립트가 같은 고객 테이블에 쓰고 있다는 사실은 그 회사의 업무와 시스템을 아는 사람만 볼 수 있으니까요. 사내 개발자의 진짜 자리는 여기예요.

그런데 제 눈에 가장 걸린 숫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병원 감염만 맡는 감염관리 간호사가 영국에서 처음 생긴 해가 1959년이라는 것. 1860년대에 소독의 효과가 숫자로 드러난 뒤 대략 100년이 걸렸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는 감염이 줄어서 생긴 게 아니라, 비누를 쓰고도 남는 감염이 쌓이고 셀 수 있게 된 뒤에야 만들어졌어요.

회사가 이와 다르게 움직일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AI로 만든 도구끼리 데이터를 꼬아놓는 사고가 몇 번 나고, 그게 누군가의 보고서에 숫자로 올라오기 전에는 그 일만 맡는 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거든요. 변화가 몇 년 사이에 일어난다면 사고도 몇 년 사이에 쌓이겠지만, 자리가 사고보다 먼저 생기길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규제가 세고 데이터 플랫폼 팀이 이미 있는 회사라면 비누를 직접 만드는 게 맞을 수 있어요. 나머지 대부분의 회사에서 개발자가 비누 공장부터 차리면 벤더와 겨루다 지게 됩니다. 그보다 지금 할 일은 현업이 AI로 만든 도구들이 각자 어떤 데이터를 읽고 어디에 쓰는지 목록을 만들어 두는 쪽이라고 봅니다. 감염 경로가 보이지 않으면 사고가 나도 셀 수 없고, 셀 수 없는 사고로는 간호사 자리가 생기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