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9마리는 자동이체를 뺀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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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앱 화면 한가운데에 다람쥐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발밑엔 그림자가 깔려 있고, 머리 위엔 지금까지 모은 금액이 화면에서 가장 큰 숫자로 떠 있고, 아래 상태창에는 매력·지혜·힘 스탯과 다음 진화까지 남은 날이 적혀 있죠. 토스뱅크 키워봐요 적금의 화면입니다.
비주얼 디자이너가 아홉 가지 최종 진화형 다람쥐와 이 화면을 만든 과정을 풀어 놓은 글인데, 저는 캐릭터보다 초반에 짧게 지나가는 한 줄에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새 버전은 자동이체 없이, 사용자가 직접 저금해야만 캐릭터와 이자가 자라도록 설계했다는 대목이요. 이 프로젝트의 진짜 결정은 거기 있다고 봐요. 다람쥐 아홉 마리와 그 무대는 그 결정의 값을 치르려고 만들어진 것이고요.
자동이체를 뺀다는 것
초기 버전은 가입만 하면 자동이체로 캐릭터가 알아서 자랐습니다. 사용자가 앱에 오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오지 않았죠. 리텐션이 떨어졌고, 가입한 뒤 점점 잊히는 적금이 됐습니다. 팀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직접 저금해야만 자라게 하고, 그 구조가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캐릭터가 키우고 싶을 만큼 매력적일 것, 그리고 내가 직접 키우고 있다는 감각이 전해질 것.
여기서 무엇을 맞바꿨는지는 짚어 둘 만합니다. 자동이체는 저축 습관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장치입니다. 잊어버려도 돈이 쌓이니까요. 그걸 뺐다는 건 저금의 꾸준함을 내주고 앱 방문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잊히는 적금"은 은행 입장에선 리텐션 문제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원래 자동이체가 노린 효과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이 상품은 31일 동안 스탯을 쌓아 최종 모습이 정해지는, 한 달짜리 도전에 가까운 적금이에요. 짧은 도전이라면 매일 들어와 직접 넣는 행위 자체가 재미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대신 이 거래가 성립하려면 매일의 불편을 덮을 만큼 매일의 보상이 커야 하죠. 글의 나머지 전부가 그 보상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아홉 마리를 만드는 데 든 것
팀은 캐릭터를 그리기 전에 성격부터 정했습니다. 31일 동안 어떤 스탯이 쌓이면 어떤 다람쥐가 나와야 하는지. 지혜와 힘이 함께 쌓이면 우주비행사, 매력만 쌓이면 무대 위 아이돌. 그다음 노드 기반 AI 이미지 툴에서 모든 캐릭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고정 문장과 캐릭터마다 바꿔 넣는 빈칸으로 프롬프트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건 뼈대의 마지막 고정 문장입니다. "첨부한 원본 이미지와 똑같은 눈과 입 디자인을 유지한다." 아홉 마리가 한 팀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이 한 줄이에요. 브랜드 가이드라인이 프롬프트 안으로 들어간 셈이죠. 뼈대가 잡히자 쓸 만한 하나를 얻는 데 백 장이 필요하던 게 서른 장, 나중엔 두세 장으로 줄었습니다.
AI가 줄여 준 건 시안을 뽑는 시간까지였습니다. 다람쥐들은 손바닥만 한 화면에 작게 들어가고, 작은 리소스일수록 디테일이 뭉개지면 인상도 뭉개집니다. 처음엔 질감과 장식, 소품을 겹겹이 얹었는데, 앱 크기로 줄이자 요소들이 서로를 가려 하나로 뭉쳐 보였습니다.

수정 과정 컷의 아이돌 다람쥐에는 별이 박힌 무지개 리본과 반짝이 효과, 리본과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드레스가 있습니다. 최종 아홉 마리에서 같은 아이돌을 찾아보면 리본 색은 옅은 파스텔로 가라앉았고, 반짝이 효과와 드레스의 리본 장식은 빠졌어요.

'무엇을 더 넣을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로 질문을 바꾼 결과입니다. 표정과 실루엣은 남기고 인상을 흐리는 장식은 덜어냈죠. 진화 전후의 연속성도 같은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몸 비율과 귀, 꼬리, 일부 이목구비는 그대로 두고 피부색과 옷, 아이템만 크게 바꿔서, 내가 키우던 다람쥐가 진화했다는 느낌을 지켰습니다. AI로 캐릭터를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어도 무엇을 남길지는 디자이너가 판단해야 했다는 결론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나 덧붙이면, 생성이 싸질수록 편집의 값은 오릅니다. 백 장 중에 고르는 눈은 AI가 대신해 주지 않으니까요.
게임처럼 보여도 이건 적금
캐릭터를 일반 적금 화면에 올리자 스티커처럼 붕 떴고, 반대로 게임처럼 배경 밀도를 높이면 캐릭터에 집중하기 어렵고 화면이 올드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팀은 이 적금만을 위한 작은 디자인 시스템과 UI 프로토타입을 새로 만들었어요. 발밑과 말풍선의 그림자, 발자국 모양의 진행 바, 선택지와 상태창이 같은 모양으로 쓰는 매력·지혜·힘 아이콘까지, 화면 전체가 다람쥐를 주인공으로 세우도록 다시 짰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브랜드다운 결정으로 꼽는 건 "게임처럼 보여도 이건 적금이에요"라는 문장에서 나온 배치입니다. 계좌에 모인 금액을 화면 맨 위에 가장 큰 숫자로 둔 것. 게임 문법을 빌려 오면서도 은행이 넘지 않을 선을 화면의 위계로 그어 둔 셈입니다. 캐릭터가 아무리 귀여워도 눈을 들면 내 돈이 먼저 보여야 한다는 태도죠. 금융 앱에서 게임화를 시도하는 팀이라면 이 위계부터 가져가야 합니다.
비용도 있습니다. 상품 하나를 위한 디자인 시스템은 그 상품이 끝나도 유지보수 대상으로 남습니다. 다른 상품으로 넓힐 계획이 있다면 투자고, 아니라면 일회성 제작비예요. 콘텐츠 쪽 청구서도 있습니다. 최종형만 아홉 마리고, 그 앞에는 31일 동안 거치는 여러 성장 단계가 있고, 단계마다 모션이 따로 붙습니다. AI가 크게 줄여 준 건 최종형 시안을 뽑는 구간이었지, 이 목록 전체가 아니었죠. 캐릭터 적금을 하나 더 만든다면 그 목록을 처음부터 다시 채워야 합니다. 글은 이 비용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32일째의 다람쥐
인터랙션은 매일의 보상을 만드는 데 집중돼 있습니다. 선택지를 탭하는 순간 저금액과 스탯 숫자가 같이 올라가고, 성장 단계마다 다른 모션으로 다람쥐가 반응하고, 오늘의 대화를 마치면 발자국이 진행 바를 한 칸 채웁니다. "오늘 쌓인 저금액과 스탯은 오늘의 보람이 되고, 다음 진화에 가까워진 모습은 내일 다시 들어올 이유가 돼요." 모바일 게임의 일일 루프를 적금에 옮긴 설계고, 31일이라는 기간에는 잘 맞습니다.
남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결과예요. 개편의 출발점이 리텐션이었는데, 바뀐 버전에서 리텐션과 저금액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글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만기 다음 날입니다. 다람쥐가 최종 모습으로 진화하고 나면, 내일 다시 들어올 이유도 함께 끝나니까요. 다 키운 다람쥐를 어디에 남겨 두느냐가 다음 적금으로 이어지는 고리일 텐데, 그 설계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캐릭터 디자인의 모범보다 거래의 모범으로 읽습니다. 불편을 하나 더하고, 그 불편을 매일의 보상으로 갚고, 보상이 본업을 가리지 않게 돈을 맨 위에 둔 거래. 31일짜리 도전이라면 남는 장사입니다. 몇 년짜리 저축에 같은 거래를 들이민다면, 그때 다람쥐가 대신 갚아야 할 불편은 아홉 마리로도 모자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