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의 뭉툭한 손은 무엇을 약속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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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의 AI 에이전트 뮤즈(Muse)를 대표하는 캐릭터 졸리(Jolly)는 손이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손가락이 없고, 손모아장갑을 낀 것처럼 뭉툭합니다. 봉제 인형 브랜드 스퀴셔블(Squishable)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 조이 프레이드-블래너는 디지털 인사이트 기사에서 이 손을 이렇게 읽었어요. 손이 너무 크고 둔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이 주도권을 갖고 있어요. 당신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안 할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낸다고요.
저는 이 기사에서 이 해석이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봅니다. 기사는 메타 뮤즈, 오픈AI 닷츠(dots), 카카오 카나나 스페이스(Kanana Space)가 일제히 귀여운 얼굴을 쓰고 나온 걸 '큐트워싱(Cutewashing)', 즉 위험을 귀여움으로 덮는 전략으로 비판합니다. 그 비판에 저도 상당 부분 동의해요. 다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 귀여움은 위험을 숨기는 포장지이기 전에 '누가 책임지는가'를 그림으로 그린 계약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브랜드 디자인이 검증해야 할 건 귀여운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계약서가 제품과 맞는지입니다.
왜 하필 상시 구동형에만 얼굴이 붙었나
한 달 남짓 사이에 세 에이전트가 나왔습니다. 9월 8일 뮤즈, 9월 29일 닷츠, 10월 13일 카나나 스페이스. 뮤즈는 통통한 털복숭이 졸리를, 닷츠는 이기(Iggy)·펠리페(Felipe)·토드(Todd)·알프레드(Alfred)·조조(Jojo)라는 눈만 있는 네온색 점 캐릭터 다섯을, 카나나 스페이스는 카카오의 대표 IP 라이언을 앞세웠어요.

능력은 전혀 귀엽지 않습니다. 뮤즈는 자체 브라우저로 이메일 발송, 여행 예약, 양식 작성, 가격 협상까지 하고, 앱을 닫아도 작업을 이어 가며 스트라이프(Stripe)의 결제 서비스 링크로 직접 결제합니다. 닷츠는 자체 클라우드 컴퓨터와 브라우저, 사용자가 연결한 4000여 개 앱으로 24시간 일하고요. 12월 비공개 베타를 앞둔 카나나 스페이스는 메시지 전송, 일정 관리, 카카오톡 설정 변경을 대신하고, 주문·선물·예약·송금까지 말 한마디로 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기사에서 제가 가장 날카롭다고 본 관찰은 얼굴이 붙은 자리의 기준입니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챗봇은 그동안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로고로 대표됐고, 같은 에이전트라도 코덱스나 커서처럼 작업 단위로 쓰는 개발 도구에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캐릭터는 사용자 곁에서 늘 돌아가는 상시 구동형에만 붙었어요. 세종대 안광섭 겸임교수는 상시 구동형 에이전트가 늘 메일과 메시지, 컴퓨터 위 행동을 보고 있으니 "감시하고 있다는 전제를 최대한 뭉개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개발 도구는 전문성을 내세워 세련된 도구처럼 보여야 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에이전트는 대중적 친밀감이 필요하다는 거죠.
동물이나 아기의 신체 특징, 큰 머리와 둥근 눈과 짧은 사지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킨첸스키마(Kindchenschema, 아기 도식)는 마케팅에서 오래 써 온 기법입니다. 새로울 건 없어요. 새로운 건 그 기법이 붙은 대상이 장난감이 아니라 내 메일함과 결제창에 손을 넣는 소프트웨어라는 점입니다.
하나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메타는 뮤즈를 '개인 초지능(Personal superintelligence)'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불렀습니다. 회사가 투자자와 업계에 하는 말은 "우리 에이전트는 초지능"인데, 사용자에게 보여 주는 얼굴은 "저는 그냥 아기예요"입니다. 같은 제품에 대한 두 개의 서사가 청중에 따라 갈려 있는 거죠. 브랜드를 오래 만져 본 사람이라면 이런 이중 서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압니다. 평소에는 두 청중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니 문제가 없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 두 이야기가 한 기사 안에서 만납니다. "초지능이라더니 왜 내 돈을 날렸나"와 "아기라더니 왜 혼자 결제했나"가 동시에 나오는 거예요. 둘 중 어느 쪽 질문에도 깔끔하게 답하기 어려운 구조를, 회사는 출시 첫날부터 스스로 만든 셈입니다.
얼굴과 약관은 같은 말을 한다
기사가 큐트워싱의 근거로 든 사실 중 가장 무거운 건 뮤즈의 약관입니다. 뮤즈를 쓰다 생긴 금전 손실은 사용자가 전적으로 부담하고, 거래 한도 설정과 계좌 모니터링과 오류 이의 제기도 사용자의 몫입니다. 메타의 배상 책임은 250달러, 또는 가장 최근 청구 원인 발생 전 12개월간 사용자가 낸 이용료 중 큰 금액을 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까의 해석을 다시 보면 묘하게 맞물립니다. 둔한 손이 하는 말은 "당신이 주도권을 갖고 있어요"였고, 약관이 하는 말은 "그러니 결과도 당신 책임이에요"입니다. 닷츠의 알프레드가 안경에 나비넥타이를 맨 집사라는 해석도 같아요. 당신이 고용주고 나는 집사일 뿐이라는 설정은, 일이 잘못되면 지시한 고용주가 책임진다는 설정이기도 하니까요. 아기는 가르치지 않고, 집사는 결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캐릭터들이 위험을 숨긴다기보다 책임의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 놓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사용자가 계약서라는 걸 못 알아챌 뿐이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사회적 책임 있는 인공지능 센터의 S. 샴 순다르 교수가 한 말이 이 지점을 찌릅니다. 귀여운 디자인은 사용자가 사랑하는 애완동물에게 더 긴 목줄을 해 주듯 생각하게 만들고, 개인 정보를 쉽게 넘기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 미국소비자연맹(CFA)도 지난 13일 '아무리 귀엽게 생겼더라도, AI 에이전트는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라는 글에서 빅테크가 더 많은 데이터와 권한을 얻으면서 책임은 사용자에게 넘긴다고 비판했어요. 귀여움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귀여움 때문에 사용자가 목줄의 길이를 재지 않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라이언을 건 카카오의 셈법
세 회사 중 저는 카카오의 선택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메타와 오픈AI는 이번 에이전트를 위해 새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카카오는 2016년에 데뷔한 라이언을 꺼냈어요. 카카오톡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쓸면 라이언이 나타나 음성과 텍스트로 응대하고, 라이언은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됐습니다. 카카오는 다른 IP 캐릭터도 에이전트에서 선보일 계획이라고 하고요.

새 캐릭터는 친밀감을 처음부터 쌓아야 하지만 라이언은 이미 10년 치 친밀감을 갖고 있습니다. 출발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죠. 그런데 이 셈법에는 반대편 항목이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엉뚱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송금을 잘못하면, 그 실수의 얼굴은 라이언이 됩니다. 이모티콘과 굿즈로 쌓아 온 IP의 호감을 에이전트의 오류율에 담보로 거는 결정이에요. 기사는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지만, 저는 브랜드 쪽에서 보면 이게 카카오 결정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카카오가 결제 같은 중요 행동은 사용자가 최종 승인하는 구조라고 밝힌 것도 사용자 보호이면서 동시에 라이언 보호일 겁니다.
손 모양과 제품 행동이 어긋날 때
반론도 짚어야 공정합니다. 귀여움 전략은 일단 통하고 있어요. 앱 분석 업체 앱토피아(Apptopia)에 따르면 뮤즈는 출시 12일 만에 미국 일간활성이용자(DAU) 64만 명을 넘었고, 미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챗GPT를 꺾고 1위에 올랐습니다. 알렉산더 왕 메타 최고AI책임자가 졸리 밈을 퍼뜨리고, 쇼피파이·페이팔·익스피디아가 졸리 이미지에 자기 로고를 합성해 가세했죠. 귀여운 얼굴 없이 이만큼의 사람이 메일함 권한을 내줬을지는 의문입니다. 마케팅으로서는 성공이에요.
제가 문제로 보는 건 귀여움 자체가 아니라 약속과 행동의 정합성입니다. 졸리의 손은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하는데, 뮤즈는 앱을 닫아도 작업을 계속하고 가격 협상까지 합니다. 메타가 이메일 전송과 구매 전에는 사용자 승인을 받는다고 밝혔지만, 협상 중에 어떤 정보를 상대에게 내놓는지까지 매번 묻는지는 알 수 없어요. 회사마다 내건 안전장치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메타는 이메일 전송이나 구매 전 사용자 승인을, 오픈AI는 비밀번호 변경 같은 일부 민감한 작업은 사용자가 직접 하는 것을 원칙으로 걸었고, 카카오는 결제 같은 중요 행동을 사용자가 최종 승인한다고 밝혔습니다. 승인을 받는 것과 아예 사용자 손에 남겨 두는 것은 다른 설계예요. 앞의 것은 에이전트가 다 차려 놓고 마지막 버튼만 사용자에게 넘기는 방식이라, 승인이 습관이 되는 순간 형식만 남습니다. 캐릭터가 약속한 것보다 제품이 더 많이 혼자 한다면, 그때부터 그 귀여움은 계약서가 아니라 워싱이 됩니다. 프레이드-블래너의 비유대로 허리케인에 이름을 붙인다고 위력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은 달라지거든요.
기사가 대안으로 든 건 금융기관용 AI 플랫폼 헤비아(Hebbia)의 어시스턴트 '맥스(Max)'입니다. 귀여움 대신 모듈형 금속 로봇 같은 모습을 택했고, 헤드 디자이너 아르준 마헤시는 맥스가 다마고치처럼 죄책감을 자극해서가 아니라 믿을 수 있고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사용자 곁에 남길 바란다고 말했어요.

저는 이걸 모든 에이전트의 정답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금융 실무자가 업무 시간에 쓰는 도구와, 일반 소비자의 일상에 상주하는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기대하는 관계가 다릅니다. 앞쪽은 도구여야 맞고, 뒤쪽은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사용성의 일부일 수 있어요. 귀여운 얼굴을 고른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에이전트의 얼굴을 정하는 디자이너에게 제가 권하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캐릭터가 하는 약속을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나는 당신 허락 없이 아무것도 안 해요", "나는 당신의 집사예요" 같은 문장으로요. 그리고 그 문장을 승인 흐름, 자동 실행 범위, 약관의 배상 조항 옆에 나란히 놓고 대조하세요. 셋이 같은 말을 하면 그 얼굴은 귀여워도 정직한 브랜드이고, 얼굴만 다른 말을 하면 아무리 잘 그려도 큐트워싱입니다. 에이전트 시대의 브랜드 디자인은 캐릭터의 표정이 아니라 그 표정과 제품 행동 사이의 거리를 설계하는 일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