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센 클로드가 2주 동안 공짜로 내 책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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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AI 모델 소식, 다들 한 번쯤 흘려보셨을 거예요. 패턴이 늘 똑같거든요. 수학 시험 몇 점, 코딩 평가 1등, 경쟁사보다 어디가 얼마나 낫다는 점수표가 줄줄이. 저도 처음 몇 번은 꼼꼼히 읽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시들해지더라고요. 점수가 아무리 올라가도 제일 좋은 모델은 늘 비싸거나, 기업 전용이거나, 어쨌든 내 책상이랑은 상관없는 데 있었으니까.
이번 주 앤트로픽 발표는 그 지점이 좀 달랐어요. 발표문의 주인공, 그러니까 지금 시점 최상위 모델이 발표 당일부터 유료 구독자라면 바로 써볼 수 있는 자리에 풀렸거든요. 그것도 당분간 추가 비용 없이요.
근데 알고 쓰면 더 재미있는 사정이 하나 있어요. 여러분 손에 들어온 게 그 모델의 자물쇠 채운 버전이라는 거예요.
가장 센 두뇌가 슬그머니 계정에 들어왔어요
주인공은 클로드 Fable 5. 성능 자랑은 딱 한 단락만 짚고 갈게요. 앤트로픽 발표문에 따르면 결제 회사 스트라이프가 자기네 환경에서 돌려봤더니 두 달 치 코딩 작업이 하루 만에 끝났다고 해요.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아도 혼자 일을 끌고 가는 시간이 이전 모델들보다 길어졌고, 문서에서 수치를 뽑아 표를 읽어내는 금융 평가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고요.
더 와닿는 건 가격이에요. 발표문 기준 Fable 5는 6월 22일까지 프로를 포함한 유료 구독 플랜에 추가 비용 없이 들어가고, 23일부터는 별도 사용 크레딧이 필요해져요. 개발자용 가격으로 봐도 앞서 일부에게만 열렸던 비공개 버전의 절반 이하인데, 절대값으로는 입력 100만 토큰당 10달러, 출력 100만 토큰당 50달러쯤이고요. 그러니까 유료 구독 중이라면 남은 2주가 이 모델을 제일 싸게 체감할 수 있는 기간인 셈이죠.
'Mythos급'은 머리가 아니라 문이 다르다는 뜻
여기까지면 흔한 출시 소식이에요. 근데 발표문에 모델이 하나 더 나와요. 클로드 Mythos 5. 이름만 보면 별개의 신모델 같죠? 실은 Fable 5와 같은 모델의 잠금 해제판이에요. Fable 5에 채워둔 안전장치를 특정 분야에서 풀어둔 버전이고, 아무나 못 써요. 미국 정부와 손잡고 사이버 방어를 맡는 조직들, 그리고 심사를 통과한 생물학 연구자에게만 준다고 해요. 발표문에 따르면 이 협력 프로그램에 이미 150곳 넘는 조직이 들어와 있고, 앞서 비공개로 먼저 써보던 사용자들은 이번 버전으로 갈아탈 수 있다고 하고요.
같은 성분의 약이 두 갈래로 유통되는 그림과 비슷해요. 약국에 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 있고, 같은 계열인데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받는 전문의약품이 있잖아요. 효능이 모자라서 갈라둔 게 아니라, 잘못 쓰였을 때의 위험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문을 다르게 달아둔 거예요. 그러니 결론은 한 문장. 둘은 머리가 다른 게 아니라 달려 있는 문이 다릅니다. 여러분 계정에 들어온 모델이 'Mythos급'인 이유가 여기 있고요. 같은 머리를 받되, 위험한 분야의 문 몇 개는 잠긴 채로 받는 거죠.
막힐 때 거절하는 게 아니라 선수를 바꿔요
그럼 그 자물쇠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Fable 5에는 감지 장치가 세 종류 들어 있다고 해요. 악의적인 해킹 시도를 가려내는 것, 위험한 생물·화학 연구를 가려내는 것, 그리고 경쟁사가 이 모델의 답변을 잔뜩 받아다 자기 모델을 흉내 내게 훈련시키는 걸 막는 것. 셋 다 성격이 다르죠. 앞의 둘은 바깥을 향한 위험을 막고, 마지막 하나는 모델 자체를 베껴가는 걸 막아요. 그 마지막은 업계에서 증류라고 부르는 수법인데, 비싼 모델의 답안지를 모아 싼 모델한테 베껴 쓰게 하는 일이에요.
재밌는 건 자물쇠가 걸렸을 때의 동작이에요. 보통 떠올리는 그림은 "죄송하지만 그 요청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같은 거절 문구잖아요. Fable 5는 다르게 짜였어요. 감지 장치가 작동하면 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이전 세대 모델이 바통을 이어받아 그 자리에서 대신 답해요. 그냥 막아버리는 게 아니라, 권한이 닿는 선까지는 어떻게든 답을 내준다는 뜻이죠.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권한 밖 업무를 만났을 때 "안 됩니다"라며 손님을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옆자리 직원이 슬쩍 이어받아 처리해주는 셈이에요. 발표문 기준으로 대화 100번 중 95번 이상은 이 교체가 아예 안 일어난다고 하고요.
다만 이 설계가 마냥 매끈하진 않아요. 교체가 조용히 일어난다는 건, 쓰는 사람 입장에선 방금 답한 쪽이 어느 모델인지 모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감지 장치가 멀쩡한 요청을 위험으로 잘못 읽을 여지도 남아 있고요. 솔직히 이 부분은 좀 찜찜해요. 안전장치는 공짜가 아니라, 약간의 불투명함을 값으로 치르고 얻는 거니까요.
점수표 말고 '내놓는 방식'을 읽으면 다른 게 보여요
이 발표를 점수표로만 읽으면 "또 1등 모델 나왔네"에서 끝나요. 근데 내놓는 방식으로 읽으면 달라져요. 이제는 "얼마나 똑똑한가"보다 "누구에게 어떻게 내놓는가"가 더 재밌는 질문이 됐다는 거예요. 모델이 충분히 세지면, 출시는 제품 자랑이라기보다 유통 설계에 가까워져요. 같은 능력을 두고 누구에겐 문을 다 열고, 누구에겐 처방전을 요구할지 정하는 일이죠.
물론 이 구도가 앤트로픽한테 유리한 이야기라는 점도 같이 봐야 공정해요. "우리 모델은 위험을 가려서 내놔야 할 만큼 세다"는 메시지는 안전 조치인 동시에 꽤 효과적인 광고이기도 하니까. (안 그런 척하기엔 너무 잘 짜인 광고죠.)
챙겨갈 관점이 하나 더 있어요. 거절 대신 교체라는 설계는, 우리가 쓰는 AI 서비스 안에서 모델이 부품처럼 갈아끼워진다는 뜻이기도 해요. 어제 답하던 두뇌와 오늘 답하는 두뇌가 다를 수 있고, 그 교체를 우리가 눈치 못 챌 수도 있어요. 그럴수록 오래 남는 건 모델 쪽이 아니라 내 쪽이에요. 내가 AI에게 일러둔 업무 규칙, 쌓아둔 대화의 맥락, 정리해둔 내 기준 같은 건 두뇌가 바뀌어도 그대로 넘어가니까요. AI를 일회용 도구가 아니라 맥락을 쌓는 팀원으로 만들자고 이 블로그가 거듭 권해온 이유도 여기 있고요.
이번 발표는 두 겹이었어요. 겉장엔 제일 센 모델을 여러분도 쓰게 됐다는 소식, 그 아래엔 자물쇠와 처방전으로 짠 유통 설계.
겉장 소식엔 유효기간이 있어요. 돈 더 안 내고 써볼 수 있는 기간이 이제 2주 남짓. 그러니 평소 하던 업무 하나를 이번 주에 그대로 맡겨보고, 이전 모델과 결과를 나란히 비교해보세요. 어차피 두뇌는 또 바뀔 테니, 비교해둔 그 감각이 다음 모델 앞에서도 내 자산으로 남거든요. 제일 센 두뇌가 내 책상에 앉아 있는 2주는,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