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카 말레이시아의 진짜 결산서는 투자 계약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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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쏘카 말레이시아는 시리즈A로 1,8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같은 달 회사는 트레보(TREVO)라는 자회사를 따로 띄웠어요. 개인 차주가 자기 차를 올리고 유지비도 차주가 대는 개인 간(P2P) 차량 공유 장터입니다. 본업이 차 2,200대를 직접 사서 굴리는 사업이었다면, 트레보는 회사가 차를 한 대도 사지 않는 사업이었죠. 그리고 2026년 8월 31일, 본업은 문을 닫았고 트레보는 지금도 영업 중입니다.
말레이시아 차량 공유 시장의 90%를 먹었던 회사의 8년을 정리한 이 글은 끝에 교훈 세 가지를 붙였습니다. 점유율보다 대당 수익구조가 먼저, 옆에 심어 둔 보험이 진짜 전략을 알려 준다, 투자자가 돈을 어떻게 빼 갈지까지 설계하라. 저는 이 중 둘째와 셋째를 가져가고, 첫째는 맞지만 흔한 얘기로 넘기겠습니다. 그리고 둘째에서 끌어낸 해피엔딩에는 조건을 하나 달겠습니다.
가져갈 하나: 곁다리는 첫날부터 따로 장부에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2017년 3월 SK와 한국 쏘카가 60:40으로 세운 합작법인이었고, 초대 CEO는 우버 말레이시아·태국 총괄을 4년 한 레온 싱 퐁이었어요. 말레이시아 가구 93%가 차를 갖고 있지만 할부·보험·주차·정비는 무겁고 렌터카는 번거로웠으니, 앱으로 신분증과 면허를 올리고 키 없이 시간당 RM8부터 빌리는 '내가 운전하는 그랩'은 분명한 해법이었습니다. 2018년 1월 240대로 출발해 2020년 1월 2,000대를 넘겼고, 회원은 190만 명까지 늘었죠.
문제는 차가 전부 회사 것이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할부, 보험, 주차면, 세차, 정비, 재배치까지 몽땅 회사 몫이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이미 약 1,100만 달러(127억 원)를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투자를 더 받아 차를 더 샀고 차종은 36개까지 불어났어요. 정작 차 한 대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가동률이 몇 %인지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트레보는 사실상 정답지였습니다. 자산을 사지 않고도 굴러가는 모델이 이미 집 안에 있었던 거죠. 그런데 회사는 차를 사는 본업과 차를 안 사는 트레보를 몇 년간 나란히 굴렸고, 2022년부터는 CEO 샤일렌드라 나단 한 사람이 둘 다 맡았습니다. 정반대 논리의 사업 둘을 한 사람이 쥐고 있으니 돈도 관심도 브랜드도 반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이 글에 붙어 있어요.
글의 처방은 두 번째 모델을 시작하는 날부터 매출, 예약당 비용, 현금 소진, 인원까지 손익을 따로 잡고, 앱·고객센터·CEO의 시간 같은 공통비도 쓴 만큼 나누라는 겁니다. 그리고 분기마다 "내년에 딱 하나에만 돈을 댈 수 있다면 어느 쪽인가?"를 물으라고요. 저는 이 처방이 이 글에서 가장 쓸모 있다고 봅니다. 스타트업의 곁다리 사업은 대개 본업의 인프라를 공짜로 빌려 쓰며 크기 때문에, 공통비를 나누지 않으면 곁다리는 실제보다 싸 보이고 본업은 실제보다 비싸 보입니다. 장부가 틀리면 경영진이 고르는 쪽도 틀리죠. 쏘카 말레이시아가 트레보 쪽으로 몇 년 더 일찍 무게를 옮기지 못한 이유가 저는 이 장부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져갈 둘: 상장이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미리 적는다
제가 이 글에서 가장 오래 본 숫자는 점유율 90%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2026년 8월 3일, SK가 87억 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해 재무적 투자자 지분을 사들였고, 이스트브릿지가 58억, 유진이 29억을 받았습니다. 177억 원을 넣었던 유진 쪽이 SK 채권 29억 원어치를 받고 퇴장한 거예요. 그 사이 회사는 2025년 매출 152억 원에 순손실 63억 원 이상, 자본총계 마이너스 601억 원의 완전자본잠식 상태였고, SK는 이미 2023년 말 투자 장부가를 0으로 처리했습니다.
글이 짚은 원인은 계약에 있습니다. 이스트브릿지와 유진은 '적격 상장'을 조건으로 들어왔는데, 코로나로 실적이 꺾이며 상장이 무산되고 경영권 매각 시도도 불발됐어요. 상장 조건은 상장했을 때만 지켜 준다는 것, 상장 못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서명 전에 정해 둬야 한다는 것, 대부분의 VC·PE 펀드는 만기가 있어 정해진 해까지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교훈입니다.
저는 이 교훈을 창업자 쪽에서 더 무겁게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투자자의 회수 경로가 막히면 그 압력은 결국 회사의 의사결정으로 흘러듭니다. 만기가 다가오는 펀드는 이사회에서 장기적 재편보다 당장의 매각이나 정리를 밀게 되고, 그게 사업의 수명을 정하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회사의 진짜 결산서는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투자 계약서였습니다. 매출과 손실은 결과였고, 그 결과를 누가 어떻게 떠안을지는 2020년과 2021년 계약서에 이미 적혀 있었으니까요. 2021년 9월 시리즈B에서 기업가치 2억 1,300만 달러를 인정받던 순간에 '상장 못 하면'의 시나리오를 한 줄이라도 적어 뒀다면 결말의 모양은 달랐을 겁니다.
조건을 달 하나: 곁다리가 본진이 됐다는 해피엔딩
글은 "보험 삼아 심어 둔 곁가지가 결국 본진이 됐다"고 맺습니다. 저는 여기에 조건을 붙이고 싶어요. 트레보는 살아남았을 뿐, 이겼다는 증거는 이 글에 없습니다. 매출도 이익도 성장률도 나오지 않아요. 자산을 사지 않는 P2P 모델은 차량 구매의 무게에서 자유롭지만, 남의 차를 빌려주는 사업에는 품질 관리와 보험과 분쟁이라는 다른 무게가 붙습니다. '차를 안 샀으니 옳았다'는 결론은 아직 이릅니다. 오히려 정직한 교훈은 둘 중 하나가 맞았다는 게 아니라, 둘을 같은 장부와 같은 사람으로 굴리는 동안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는 쪽일 겁니다.
첫 번째 교훈, 점유율보다 대당 수익구조가 먼저라는 말은 흔하지만 계산 하나는 기억해 둘 만합니다. 월 비용 RM1,500짜리 차를 시간당 RM8에 빌려주면 한 달 약 190시간, 매일 6시간 남짓 예약이 차야 본전입니다. 같은 차라도 붐비는 쇼핑몰 주차면과 한산한 콘도 주차면은 다른 사업이고요. 적자 시장의 1등은 그냥 덩치 큰 적자 회사라는 말은 이 계산 한 줄로 충분히 설명됩니다.
정리하면, 두 번째 사업을 굴리는 팀이라면 이번 분기부터 공통비를 나눈 별도 손익을 만드세요. 그리고 투자 계약서의 '상장하지 못하면' 조항을 다시 읽으세요. 회사가 잘될 때 아무도 읽지 않는 그 몇 줄이, 잘 안 될 때 회사의 결말을 대신 써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