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obe 임원이 해약 위약금을 '헤로인'이라 불렀다 — 1억 5천만 달러짜리 교훈
![]()
소프트웨어 하나 해지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3월 13일, Adobe가 미국 법무부(DOJ)에 7,500만 달러(약 1,050억 원)를 지불했어요. 거기에 피해 고객에게 7,500만 달러 상당의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총 1억 5,000만 달러 규모.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프로를 묶은 Creative Cloud —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사실상 표준 도구를 만드는 회사가 '구독 해지를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벌금을 맞은 거예요.
근데 금액보다 눈이 간 디테일이 하나 있어요.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Adobe 내부 임원 발언. 해약 위약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더라고요 — "Adobe에게 헤로인 같은 존재"라고. 이건 UI 실수가 아니에요. 중독적 수익 구조라는 걸 내부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근데 철회할 수 없었어요. 제거하면 "큰 비즈니스 타격을 입으니까"요.
'Annual, Paid Monthly' — 이름부터가 함정

Creative Cloud 요금제 중에 'Annual, Paid Monthly'라는 옵션이 있어요. '매월 내는 요금제'처럼 보이잖아요? 실제로는 1년 약정이에요. 중도 해지하면 남은 계약 금액의 50%에 해당하는 위약금이 붙어요. 수백 달러.
2024년 6월, DOJ와 FTC가 Adobe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혐의 세 가지. 첫째, 가입 시 핵심 조건을 숨겼다는 거예요. 1년 약정이라는 사실과 위약금을 작은 글씨나 하이퍼링크 뒤에 감췄다는 거죠. 둘째, 해지 과정을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었어요. 온라인 해지는 여러 페이지를 거쳐야 했고, 전화 해지는 여러 상담원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어요. 셋째, 해지를 시도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위약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구조.
DOJ가 이걸 뭐라고 표현했냐면요. 고객이 '매복 공격(ambush)'을 당한 것이라고.
Adobe의 2025 회계연도 매출 215억 달러. 합의금 7,500만 달러는 연 매출의 약 0.35%예요. 직장인 연봉으로 치면 과속 딱지 한 장. 근데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선례예요.
바퀴벌레 트랩부터 수치심 유발까지 — 다크패턴의 분류학
'다크패턴'이라는 용어는 2010년 런던의 UX 디자이너 해리 브리그널이 만들었어요. 단순히 불편한 디자인이 아니에요. 사용자의 실수나 관성을 유발하도록 계산된 설계라는 점이 본질이에요. Adobe 사건에 활용된 패턴을 보면 네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요.
로치 모텔. 바퀴벌레 잡는 끈끈이 트랩에서 이름을 딴 거예요.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 Adobe의 해지 프로세스가 정확히 이거예요. 가입은 클릭 몇 번이면 끝나지만, 해지는 여러 페이지를 거치거나 전화를 걸어야 했어요.
숨겨진 비용. 결제 직전 또는 해지 시점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추가 비용이에요. Adobe의 중도 해지 위약금이 딱 이 유형.
잘못된 계층구조. 사용자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다른 곳으로 유도해요. '계속 구독' 버튼은 크고 화려하게, '해지' 버튼은 작고 회색으로.
확인 수치심. 읽다가 좀 웃었는데요, 해지하려는 사용자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는 문구를 보여주는 거예요. "정말 이 혜택을 포기하시겠어요?" 같은. 뉴스레터 구독 해지 버튼에 "아니요, 저는 최신 정보를 놓치고 싶어요"라고 적어놓는 식이에요. (진지하게요?)
이런 패턴을 쓰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FTC가 참여한 국제 소비자 보호 네트워크(ICPEN)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642개 웹사이트와 앱 중 76%가 최소 하나 이상의 다크패턴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67%는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쓰고 있었고요.
아마존 25억 달러, EU 디지털공정법, 한국 전자상거래법 — 전방위 규제
Adobe 사건만 놓고 보면 개별 기업의 문제 같지만, 실은 글로벌 규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미국부터 볼게요. 2025년 9월, FTC가 아마존과 25억 달러(약 3조 5,000억 원) 규모로 합의했어요. 프라임 구독에서 다크패턴으로 3,500만 명을 원치 않는 구독에 가입시켰다는 혐의. 아마존 내부에서는 프라임 해지 절차를 '일리아드 플로우'라고 불렀는데, 해지하려면 4페이지, 6번 클릭, 15개 선택지를 거쳐야 했어요. 일리아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이름을 붙인 거예요. (셀프 인식은 있었던 거네요.)
FTC가 2024년 확정한 'Click-to-Cancel' 규칙은 2025년 7월 항소법원에서 무효화됐어요. 절차적 미비라는 이유. 현 행정부 하에서 재추진 가능성은 낮아 보여요.
EU는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에서 다크패턴을 명시적으로 금지했고, 2025년부터 '디지털공정법(Digital Fairness Act)'을 준비하고 있어요. 다크패턴뿐 아니라 중독성 디자인, 개인화 가격 책정, 인플루언서 마케팅까지 포괄하는 수평적 프레임워크예요.
한국도 움직였어요. 2025년 2월 14일, 개정 전자상거래법이 시행되면서 6가지 유형의 다크패턴이 법적으로 금지됐어요. 숨은갱신, 순차공개 가격책정, 특정옵션의 사전선택, 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방해, 반복간섭. 8월부터 공정위가 본격 단속에 나섰고, 10월에는 OTT·음원·커머스 4개 사업자에 첫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했어요. 개정법 시행 후 최초의 실제 제재 사례.
세 지역의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아요. '가입은 쉽게, 해지는 어렵게'라는 비즈니스 관행이 더 이상 묵인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리텐션은 가치에서 오는가, 마찰에서 오는가
여기서 좀 불편한 얘기를 해볼게요.
GTM 전략 관점에서 보면, 이건 리텐션 메트릭의 함정이에요. 기업이 '이탈률(churn rate)'을 KPI로 세우면 조직은 본능적으로 이탈을 '막는' 방향으로 움직여요. 제품의 가치를 높여서 고객이 자발적으로 남게 하느냐, 해지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 억지로 붙잡느냐. 전자는 어렵고 느려요. 후자는 쉽고 빨라요. 그리고 분기 실적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아요.
다크패턴의 가장 교활한 점이 바로 이거예요. 측정되지 않는 피해를 만든다는 것. 해지를 포기한 고객은 이탈률 통계에 잡히지 않아요. 불만을 품은 채 결제를 계속하는 고객은 리텐션 지표에서 '충성 고객'으로 분류돼요. 기업 내부에서 이 구조가 문제라는 걸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결국 진짜 질문은 "해지 버튼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가 아니에요. "우리의 리텐션은 가치에서 오는가, 아니면 마찰에서 오는가." 이건 UX 팀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인센티브 구조 문제예요.
다음에 어떤 서비스를 해지할 때, 한번 세어보세요. 가입할 때 몇 번 클릭했는지, 해지할 때 몇 번 클릭해야 하는지. 그 차이가 그 기업이 당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알려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