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전화를 줄이려는 팀이 AI보다 먼저 볼 것

전화와 AI를 합친 아이콘

월 550건, 연 300시간. 토스뱅크 전세대출 팀이 AI 상담으로 줄인 상담 전화와 통화 시간입니다. 두 숫자를 나눠 보면 1년에 6,600건, 18,000분이라 통화 한 건이 평균 3분이 채 안 됩니다. 대부분 짧고 단순한 문의였다는 뜻이고, 300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치면 37일 남짓. 제목에 걸기엔 생각보다 작은 숫자죠.

그런데도 저는 이 사례가 숫자보다 크다고 봐요. 팀이 상담 로그에서 출발했고, 그 로그로 진입점을 다시 설계했고, 그 과정에서 AI 상담에 대한 흔한 착각 하나를 정면으로 보여 주거든요. AI 상담을 붙이려는 팀이 이 글에서 가져갈 건 AI 쪽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습니다.

화면은 맞았는데 전화가 왔다

출발점은 상담팀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사용자들이 서류를 제대로 내지 못해 심사가 자꾸 막힌다는 것. 디자이너가 문의 데이터를 직접 열어 보니 서류 제출 방법뿐 아니라 단순한 정보를 묻는 문의가 유독 많았고, 이 문의가 상담 인력을 붙잡는 바람에 심사까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정보는 화면에 이미 쉽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답을 못 찾은 게 아니라, 그 답이 내 경우에도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거죠. 집을 구하는 큰돈이 걸린 대출에서 '아마 맞겠지'로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태아도 자녀로 쳐요?"와 "임신 중인데 부양가족에 들어가나요?"는 같은 질문인데, 보증금 규모나 계약 형태, 신청 시점이 붙으면 답이 갈리고요. 화면의 문장을 다듬는 걸로는 닿지 않는 문제라, 사용자가 자기 말로 묻고 제품이 답하게 하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진단에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첫 번째 도입 조건이 나와요. 디자이너가 상담 문의 데이터를 직접 열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고객센터 로그는 CS 조직의 것이고 제품 팀은 요약 보고서만 받는 회사가 많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 벽이 없었기에 시작될 수 있었던 셈이죠.

질문은 이미 있었다

AI를 출시하고 상품 인트로 화면에 "대출 신청하기 전, 궁금한 점 AI에게 물어보기" 배너를 달았지만 거의 아무도 누르지 않았습니다. 팀의 진단은 빈 입력창이었어요. 무엇을 물어야 할지, AI가 어디까지 답하는지 모르니 누르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글에 실린 첫 버전 화면을 보면 조금 다른 게 보입니다.

첫 버전: 상품 화면의 배너와, 배너를 누르면 열리는 채팅 화면

배너를 누르면 열리는 채팅 화면 안에는 이미 "신혼부부 조건이 궁금해요", "집주인이 법인인데 받을 수 있나요?" 같은 예시 질문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시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예시가 배너를 누른 사람에게만 보였던 거예요. 배너 한 줄로는 이 AI가 내 질문에 답할 수 있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으니 누르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요.

개선판은 질문을 채팅창 밖으로 꺼냈습니다.

개선판: 상품 화면과 심사 대기 화면 위에 놓인 질문 칩

상품 화면에는 "어떤 서류가 필요해?", "태아도 자녀로 포함돼?" 같은 질문이, 심사 대기 화면에는 전입신고 시기나 법인 임대인 가능 여부가 칩으로 붙었습니다. 상담 문의 데이터에서 단계별로 가장 많이 물은 질문들입니다. 결과는 인트로 화면의 AI 사용률 약 5배, 심사 대기 화면 약 2배.

저는 이 변화를 "빈 입력창 대신 예시 질문"보다 "질문의 위치 이동"으로 읽어야 정확하다고 봅니다. 같은 질문이라도 의심이 생기는 화면 위에 있으면 사용자는 그걸 자기 질문으로 알아봅니다. 남이 이미 물어본 질문을 보는 순간 이런 것도 물어도 되는구나 싶어지고, 그다음부터 사용자들이 자기 상황을 덧붙여 자유롭게 묻기 시작했다는 관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요. 이 구분이 중요한 건 처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채팅창 안의 추천 질문을 아무리 다듬어도 진입률은 오르지 않아요. 바꿔야 할 건 호스트 화면입니다.

숫자를 읽을 때 달아 둘 단서

효과 쪽 숫자에는 단서를 달고 싶습니다. 먼저 AI에 질문하고 적합한 답변을 받은 사용자가 그렇지 않은 사용자보다 상담 전화로 이어지는 비율이 약 10%p 낮았다는 비교. 적합한 답을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집단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질문일수록 AI가 답을 잘하고, 단순한 질문을 한 사람은 원래도 전화할 일이 적으니까요. 무작위로 나눈 비교가 아니라면 10%p 전부를 AI의 공으로 돌리긴 어렵습니다.

더 아쉬운 건 빠진 숫자예요.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단순 문의가 상담 인력을 붙잡아 심사가 늦어진다는 문제였는데, 심사 지연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진짜 성과는 연 300시간보다 그쪽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큰돈을 기다리는 사용자에게 심사 하루는 통화 3분보다 훨씬 무거우니까요.

대출 상담에서 틀린 답의 비용도 작지 않습니다. 대출 운영팀이 실제 상담에서 해야 할 답을 정의했다는 대목은 있지만, 답이 틀렸을 때 어떻게 걸러 내는지는 글에 없어요. 따라 하려는 팀이라면 이 부분부터 설계해야 합니다.

도입한다면 어떤 순서로

이 방식이 맞는 서비스는 분명합니다. 질문은 반복되지만 사용자의 조건에 따라 답이 갈리고, 돈이나 계약처럼 틀리면 안 된다는 불안이 큰 서비스. 대출, 보험, 세금 같은 영역이죠. 반대로 질문 종류가 적거나 답이 하나로 정해지는 서비스라면, AI보다 자주 묻는 질문과 답을 해당 화면에 바로 붙이는 쪽이 싸고 안전합니다.

맞는 서비스라도 순서는 이렇게 권하고 싶어요. 상담 로그를 단계별로 묶어 상위 질문을 뽑고, 그 질문을 의심이 생기는 화면 위에 먼저 올리고, AI는 그다음에 붙여 질문의 꼬리를 받게 하는 겁니다. 토스뱅크 사례에서 사용률을 끌어올린 건 두 번째 단계였고, 그건 AI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걸 먼저 해 보면 정말 AI가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도 로그가 알려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