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30분도 안 걸린다'는 말, 가장 무서운 사람은 그 말을 해본 경험자예요

AI 분위기

"AI가 디자인 시안 하는 데 30분도 안 걸리더라." "게임 만드는 건 초등학생도 하더라."

디자인 현장의 경영진들이 가끔 이런 말을 뱉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근데 그 결과물을 고객사에 자신 있게 공유하고 바로 서비스할 수 있느냐 물으면, 누구도 쉽게 답 못 해요. 그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요즘 회사에서의 화두는 AI에서 시작해서 AI로 끝나요. 대기업들은 AI 시대에 맞춰 효율적인 슬림화 전략으로 가는 중. 그 여파가 산업 전반에 퍼지고 있어요. 대기업 주가는 고공 행진, 대신 상생해왔던 프로젝트 물량들은 줄어들고요. 시장은 이미 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그 기울기가 만들어내는 피로가 먼저 도착해요.

AI를 겉핥기로 맛본 사람들이 무서운 말을 해요

우리 쪽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로의 갭' — 결정권자는 뉴스 보고 느낀 인상으로 말하고, 실무자는 손으로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요 — 이 갭이 주는 피로도는 지금 풀어야 할 숙제예요.

아직 AI를 겉핥기로 맛본 경영진들은 종종 무서운 이야기를 뱉어내요. 앞서 나온 그 문장 두 개가 그래요. 시안 하는 데 30분, 게임은 초등학생도.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결과물을 "고객사에게 자신 있게 공유하고 바로 서비스할 수 있느냐"에서 말이 멈춰요. 아직까지는요.

AI가 어디까지 해 주길 바라는가

반복적이고 비슷한 페이지들은 늘 존재해왔어요. 그것들을 모아서 효율적인 생산 방안에 대한 고민은 진행 중이고요. 이건 AI가 들어와서 생긴 이야기가 아니라, 디자인 실무에서 원래 있던 과제예요.

문제는 '뚝딱'이라는 단어예요. 뚝딱 만들어내는 디자인이 경쟁력이 있는 디자인이냐. 그 뚝딱을 수백 수천 장 돌려서 쓸 만한 걸 골라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돼요. 그 시간을 실무자들이 지금 견디고 있고요. 밖에서 보면 생산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셔터를 수천 번 누르는 작업으로 바뀐 것뿐이에요.

시안 이후 한 달가량 컨펌과 수정을 거치는 것도 흔한 일이에요. 고객 마음에 안 들어서만이 아니에요. 중간에 전략도 수정되고, 수급되는 자료에 따라 변수도 생기고, 모두가 마음에 들었는데 대표님까지 올라가면 또 다른 변수와 수정이 생겨요. 다듬어진 다음에야 시안이 비로소 완성. 수천, 수억의 비용을 지불한 그들에게는 있을 수 있는 신중한 일이에요.

이런 컨펌과 로컬 대응을 일일이 AI가 해줄 수는 없잖아요.

생산성이 아닌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

우리 팀은 디자인 생산성보다 AI로 품질을 높이는 것에 더 혈안이에요. 그동안 목말랐던 부분. 3D, 특수효과, 일러스트 드로잉. 외부 업체 지원과 시간·비용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영역들을 과감하게 디자인에 녹이고 있어요.

AI로 내레이션을 넣고, 입체감 있는 3D 영상 아이콘도 자유롭게 만들고, 기업 홍보 영상 소스가 부족해도 AI로 더 만들어 넣어 풍성한 영상을 만들어요. 인테리어 제품 브랜드에선 AI를 활용한 버추얼 쇼룸을 제안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했고요. AI를 생산성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원래 못 하던 걸 하게 해주는' 도구로 쓰는 거예요. 방향이 정반대죠.

생산성의 이유로 이 과정을 30분 만에 AI로 뚝딱 만들어 내놓는 건, 아직 내 상식에선 미슐랭에서 단가 맞추려고 밀키트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밀키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미슐랭에서 왜 하느냐는 거죠.)

퀄리티보다 아직은 비용에 직결된 생산성을 더 알아주는 게, 디자인 분야에서까지도 제조가 주력인 국가가 가진 현실인 것 같아요.

뚝딱 해본 경험자들이 가장 무섭다

중요한 프로젝트는 경쟁 입찰로 시작돼요. 고객사에서 여러 업체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선별, 업체끼리 경쟁 붙여 전략 제안서와 디자인 시안을 받아요. 이때는 누구보다 차별화 전략이 있어야 하고,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제안해야 하며, 기술은 안정적이어야 해요. 작업 참여자들의 프로필과 경력 사항까지 모두 받아내고 평가해요. 수천, 수억짜리 프로젝트에서 당연한 요구.

근데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예요. 남들과 다른 차별화 전략을 PT에서 뱉어내는 자리에서, AI가 기존 데이터들을 학습해서 내놓은 결과물을 제시할 순 없잖아요. 차별화를 요구하는 게임판에 '기존 데이터의 평균값'을 들고 들어가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에요.

그런데 요즘 그 고객사들이 실무에서 쉽게 뱉는 말이 있어요. 본인이 해봤더니 AI로 뚝딱 된다며 비용과 기간에 대한 후려치기를 요구한대요. 말대로 뚝딱 만들어진 결과물을 쓸 거면 본인들 중 누구나 하면 되고, 경쟁 입찰은 왜 받는 건데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성립돼요.

사람 잡는 선머슴이 부쩍 늘어난 혼란의 시대예요.

정신 바짝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