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끝내 주는 회사의 원가는 AI가 아니라 예외가 정한다

소프트웨어만 팔지 말고, 일 좀 끝내주세요

영국 AI 로펌 Garfield가 중소기업 대신 보내 주는 독촉 서신 한 통 값은 2파운드입니다. 소송 전 정식 통지서는 7.5파운드고, 둘 다 부가세는 별도입니다. 변호사에게 맡기면 법률비가 채권액을 넘을 것 같아 그냥 떼이던 소액 미수금이, 이 가격에서는 처리할 만한 일이 됩니다. 저는 카카오벤처스가 '네오펌'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이 글에서 이 대목이 가장 정직한 장면이라고 봅니다. AI가 낮춘 원가가 시장 밖에 있던 수요를 안으로 들여온 경우니까요.

네오펌은 버티컬 SaaS를 파는 대신 그 소프트웨어로 고객의 일을 직접 해 주고 결과를 파는 회사를 말합니다. 계약 검토 프로그램을 사는 게 아니라 계약 검토를 맡기는 식이죠. 글의 정의는 세 가지입니다. 도구가 아닌 완성된 결과를 제공하고, AI가 핵심 업무 흐름의 유의미한 부분을 직접 수행하고, 조직과 운영이 AI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을 것. 이 정의에 저도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결과를 판다'는 말에는 정의에 빠진 무게가 하나 실려 있어요. 결과를 파는 회사는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저는 이 모델의 원가를 정하는 게 AI가 처리하는 90%가 아니라, 사람이 떠안는 나머지 10%의 예외라고 읽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펌이 되면 무엇을 떠안나

글이 든 사례는 화려합니다. 상업계약을 검토하는 AI 로펌 Crosby와 보험중개사 Harper가 2026년 수천만달러 규모 투자를 받았고, Y Combinator에서는 General Legal, LegalOS 같은 AI 네이티브 로펌이 나왔습니다. 로펌을 위한 SaaS를 만들 수 있던 팀이 로펌이 되고, 보험중개인용 생산성 툴을 팔 수 있던 팀이 중개사가 되고, 병원 청구 소프트웨어를 팔 수 있던 팀이 청구 업무를 직접 맡는 흐름이죠.

이 전환이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서비스업은 일감이 늘면 사람을 같은 속도로 늘려야 하는 사업이었는데, AI가 분류·추출·대조·초안 작성 같은 단계를 맡으면 사람 한 명이 끝낼 수 있는 건수가 늘고 건당 원가가 내려갑니다. 매출과 인원이 함께 움직이던 사슬이 끊어질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어느 단계를 자동화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글이 든 가정이 좋은 예예요. 부동산 중개에서 매물 탐색이 전체 시간의 10%라면, 그걸 완전히 자동화해도 현장 안내·협의·계약에 드는 나머지 90%는 그대로라 생산성은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개발자라면 암달의 법칙으로 바로 이해할 얘기입니다. 전체 속도는 개선하지 못한 부분이 정합니다. 그래서 직업 전체가 AI로 대체될지를 묻기보다, 사람의 시간과 돈이 어느 단계에 몰려 있고 그 단계를 AI가 맡을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처방이 나오죠. 저는 이 대목이 네오펌보다 넓게 쓸모 있다고 봅니다. 사내 AI 도입을 검토하는 팀도 같은 계산을 먼저 해야 하니까요.

작은 사업자가 많아 비슷한 일이 각자의 수작업으로 반복되는 시장을 노리라는 조언도 같은 계산 위에 서 있습니다. 개별 사업자는 AI에 투자할 자본도 사람도 없으니, 하나의 운영 시스템을 여러 고객에 돌리는 쪽이 규모의 경제를 먹습니다. 이 그림에서 손해를 보는 쪽도 분명합니다.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사업자들이죠. 네오펌의 성장은 상당 부분 그들의 일감을 흡수하는 과정일 겁니다.

그런데 SaaS 회사가 펌이 되는 순간 장부에 새 항목들이 붙습니다. SaaS는 소프트웨어가 틀려도 최종 판단은 고객 몫이었어요. 펌은 다릅니다. 계약서 한 조항을 놓치면 그 손해를 고객이 아니라 펌이 물어야 하고, 그 위험을 덮는 배상책임보험과 면허, 검수 인력이 원가에 들어옵니다. 글은 이 부분을 "AI와 전문가를 결합해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물의 품질을 책임진다"는 한 문장으로 넘어가는데, 저는 네오펌 사업계획서에서 가장 두꺼워야 할 장이 바로 여기라고 봅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체질로는 익숙하지 않은 비용이고, 투자 유치 시점의 사례들에는 아직 이 비용이 청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가운데는 계속 움직인다

핵심 절차는 AI, 완성은 사람 — 사람의 개입 정도와 네오펌 적합성

글에서 제가 가장 동의하는 도구는 이 inverted-U입니다. 업무가 완전히 정형화돼 AI만으로 끝나면 소프트웨어로 팔면 되니 펌으로서의 해자가 약하고, 매번 맥락이 달라 사람 판단이 대부분인 일은 AI로 레버리지를 크게 얻기 어렵습니다. 네오펌이 설 자리는 반복 업무는 AI가 하되 중요한 예외와 판단에는 전문가가 필요한 중간 지대라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만 보태고 싶습니다. 이 곡선의 꼭짓점은 고정돼 있지 않아요. 모델이 좋아질수록 어제의 중간 지대는 왼쪽, 즉 '소프트웨어로 충분'한 쪽으로 밀려납니다. 오늘 전문가 검수가 필요해서 펌의 형태로 팔던 계약 검토가 2년 뒤에는 고객이 직접 돌리는 도구로 충분해질 수 있다는 뜻이죠. 그 순간 펌의 마진은 SaaS 가격과 경쟁하게 됩니다. 곡선의 오른쪽 끝도 볼 만합니다. 매번 맥락이 달라 사람이 거의 다 하는 일을 AI 네이티브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회사는, 투자 설명서의 단어만 새것이지 원가 구조는 옛 서비스업 그대로입니다. 곡선 위 자기 위치를 정직하게 재는 것부터가 네오펌의 첫 과제인 셈이죠.

그래서 저는 해자를 글과 조금 다르게 봅니다. 글은 전문성·고객관계·운영 노하우를 꼽았는데, 그중 오래 버티는 건 'AI가 아직 못 하는 판단'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입니다. 면허, 배상 능력, 그리고 고객이 문제가 생겼을 때 전화할 사람이 있다는 신뢰. 모델 성능이 아무리 올라가도 이건 소프트웨어가 대신 가져가기 어렵습니다. 중간 지대가 왼쪽으로 밀리면 그때 펌에 남는 건 이 자격뿐일 테니, 처음부터 이걸 쌓는 데 돈을 써야 맞습니다.

진입 경로보다 예산의 출처가 먼저다

글은 진입 경로를 셋으로 나눕니다. 첫째는 업계 경험으로 직접 창업하는 길입니다. 펀드관리사 Hanover Park는 5억 달러 이상을 20개 가까운 법인에 걸쳐 운용하는 고객 Dream Ventures 한 곳에서 자금 대사·분배·회계·보고 같은 반복 업무를 확보했어요. 고객 한 곳의 업무량이 크면 인수 없이도 규모가 나온다는 사례입니다. 둘째는 기존 사업자를 사는 길입니다. Procode는 외과계 의료기관의 의료 코딩과 청구를 대행하던 Auctus Group을 인수해 고객과 물량과 현업 인력을 한 번에 얻었습니다. 셋째는 SaaS에서 서비스로 넓히는 길로, 채권추심 소프트웨어 회사 Oliver Technology가 소송 지원 업체 Lawgix Services를 인수한 경우입니다.

인수 경로에 대해서는 글도 경고를 붙였습니다. 인수가 생산성을 보장하지는 않고, 기존 전문성과 고객관계를 지키면서 데이터·절차·직원 역할을 AI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하며, 그 재설계를 여러 회사에 반복할 수 있어야 인수가 성장 방식이 된다는 것. 저는 이 경고를 더 세게 읽습니다. 사모펀드식 롤업이 흔히 무너지는 지점이 바로 '인수한 회사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 통합이 안 되는 것'이고, 거기에 AI 재설계라는 과제가 하나 더 얹히는 셈이거든요. 인수한 회사의 숙련자들이 자기 일을 기계에 넘기는 설계에 협조할 이유가 약하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 경로는 세 가지 중 실행 위험이 가장 큽니다.

저는 경로보다 그다음 대목, 고객의 어떤 예산을 가져올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존 외주 예산을 대체하는 건 설득이 쉽지만 기존 로펌과 가격 경쟁이 되고, 내부 인건비를 서비스비로 바꾸는 건 일을 뺏기는 현업 담당자를 설득해야 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세 번째, 비용 때문에 포기했던 수요예요. Garfield가 그렇고, 개인 대상 법률 서비스 Lawhive도 그렇습니다. Lawhive는 정보 수집·법률 조사·서류 작성 같은 반복 업무를 처리해 변호사가 더 많은 사건을 맡게 했고, 대표 말로는 소비자 가격이 평균 약 30% 낮아졌으며 영국 이용자 절반은 Lawhive가 없었다면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을 거라고 답했습니다.

이 시장은 경쟁자가 없다는 게 장점이지만, 동시에 건당 가격이 낮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파운드짜리 서신에서 예외 한 건, 즉 채무자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주소가 틀려 사람이 들여다봐야 하는 건이 생기면 그 한 건이 수십 통의 이익을 지웁니다. 가격을 낮춰 수요를 넓힐수록 예외 처리 비용이 장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죠. 포기했던 수요를 노리는 네오펌일수록 예외율이 사업의 생사를 가른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첫 예산을 고를 때 저는 외주 대체부터 권하겠습니다. 고객이 이미 돈을 쓰고 있어 외주의 필요성을 새로 설득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비교 대상이 있습니다. Crosby가 기존 로펌이나 계약 변호사에게 가던 법률비 안에서 들어간 것처럼요. 글의 조언도 같은 방향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가져오지 말고 표준화된 일부 계약부터 맡아 결과를 비교하게 한 뒤, 신뢰가 쌓이면 범위를 넓히라는 것. 이 순서를 예외율의 언어로 바꾸면, 예외가 가장 적은 일부터 받아 장부를 검증하고 예외가 많은 일은 그 장부가 버틸 때 받으라는 얘기가 됩니다. 내부 인건비를 서비스비로 돌리는 두 번째 예산은 그다음입니다. 구매 결정권자보다 그 일을 하던 현업 담당자의 협조가 관건인데, 자기 일을 넘기는 사람이 예외 사례를 성실히 넘겨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거든요.

경쟁자를 채널로 바꾼 Harper의 방식도 같은 눈으로 보면 영리합니다. 소규모 보험중개사가 다루지 않던 기업보험 고객이나 배치하기 어려운 위험을 Harper가 넘겨받고, 소개한 중개사는 수수료 일부를 받습니다. 기존 업체가 거절하던 일, 즉 예외가 많아 사람 손이 많이 가던 일을 받아 오는 구조라 Harper가 그 예외를 기존 업체보다 싸게 처리할 수 있어야만 성립합니다. 채널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외 처리 능력에 대한 베팅이에요.

경험이 쌓이면 정말 싸지는가

글이 네오펌의 승부처로 꼽는 구조는 두 가지입니다. 업계에서 직접 일해 본 도메인 전문가가 어디에 시간과 비용이 쌓이는지 짚고 엔지니어가 그걸 AI 적용 지점으로 옮기는 조직, 그리고 일을 하며 쌓인 전문가의 수정·예외·오류를 시스템에 다시 반영해 다음 일을 더 싸게 만드는 학습 구조. 이른바 데이터 플라이휠입니다.

방향은 맞지만 이 바퀴가 실제로 도는지는 하나의 숫자로 드러납니다. 같은 유형의 일에서 사람이 손대는 비율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느냐. 글도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경쟁사도 쉽게 얻을 수 있거나 성능 개선에 기여하지 않는 정보는 경쟁력이 되기 어렵다고 선을 긋습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더 나가야 합니다. 법률이나 보험처럼 규정과 판례가 계속 바뀌는 업무에서는 어제의 수정 기록이 내일의 정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플라이휠이 도는 업무와 돌지 않는 업무를 가르는 건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 업무의 규칙이 얼마나 안정적인가예요.

VC가 스스로 건 브레이크

네오펌의 핵심 지표

이 글에서 제가 가장 높이 사는 건 투자사가 자기 테제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마지막 장입니다. 처리 속도와 인당 업무량은 출발점일 뿐이고, 인건비가 준 만큼 AI 모델·API 비용이 늘 수 있고, 검수와 재작업에 돈이 들 수 있고, 절감분을 가격 인하로 다 넘기면 남는 게 없다는 지적. 여기에 Emergence Capital의 'Mirage PMF', 즉 매출과 고객 유지는 좋은데 서비스 대부분을 여전히 사람이 하는 상태라는 개념을 붙였습니다. 수요는 확인했지만 AI로 확장 가능한 사업 구조를 만든 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고객·업무 단위의 손익, 마이크로 P&L을 보라는 처방이 나옵니다. 위 표의 네 지표가 그것입니다. 업무·고객 단위 매출과 수행 비용과 이익, 건당 사람 개입 시간과 인건비, 건당 AI·API 비용과 오류·재작업률, 매출총이익률과 회사 전체 수익성.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얹겠습니다. 예외율의 추세입니다. 지금 예외율이 몇 %인지보다, 업무 경험을 시스템에 반영하겠다는 약속대로 그 숫자가 분기마다 내려가는지가 중요해요. 예외율이 내려가지 않으면 사람 비용은 고정비로 남고, 그 회사는 AI를 쓰는 평범한 서비스 회사입니다. 거기에 배상·보험 같은 책임 비용 항목을 따로 떼어 보면 이 표는 비로소 펌의 장부가 됩니다.

한국의 네오펌이 나올 자리

글은 한국에서 세무·회계·법률 같은 전문 서비스의 소유·운영 주체에 제약이 있어 해외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고 짚고, 대신 카카오벤처스 패밀리사 모드픽을 예로 듭니다. 일본 직구를 시작으로 구매부터 검수·포장·통관·배송·고객 응대까지 맡는 회사인데, 운영 인력 4명으로 누적 매출 100억 원을 처리하고, 하루 100건 넘는 고객 문의에 사람이 쓰는 시간을 10분 미만으로 줄였고, 배송 기간을 업계 평균 7~14일에서 2~7일로 줄였다고 합니다.

투자사가 자기 포트폴리오를 사례로 드는 건 감안해서 읽어야 하지만, 방향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네오펌이 먼저 나올 자리는 면허가 장벽인 전문직보다 구매대행처럼 면허 없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운영 업무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법률·세무 쪽에서 네오펌을 하려면 소유와 운영의 제약을 먼저 풀어야 할 텐데, 그건 모델 성능이 아니라 지배구조의 문제라 기술 팀이 혼자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닙니다. 다만 모드픽 사례에도 마진 숫자는 없어요. 매출 100억을 4명이 처리한다는 건 인당 처리량이지 이익이 아니고, 구매대행은 원래 마진이 얇은 업입니다. 같은 글이 권한 마이크로 P&L 표를 자기 포트폴리오에 먼저 대 보였다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버티컬 SaaS를 하는 팀이 네오펌으로의 확장을 검토한다면, 먼저 고객사 한 곳의 업무를 건 단위로 쪼개 예외율과 건당 사람 시간, 그리고 틀렸을 때 누가 얼마를 무는지를 재 보길 권합니다. 예외가 데이터로 줄어드는 구조가 보이고 책임을 질 자격을 갖출 수 있다면 해볼 만한 베팅이고, 예외가 매번 새롭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다면 그 팀은 지금처럼 도구를 파는 편이 낫습니다. 결과를 판다는 건 결국 틀렸을 때 내가 물어 주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