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혼자 AI로 서비스를 다시 만든 작업기, 우리 팀에 옮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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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팀 채널에 공유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의 승인을 받고 배포했는가. 답은 "아무에게도"예요. 서핏 창업자 김진욱은 개발 팀이 해산된 뒤 1인 기업으로 남은 서비스를 지난 5월쯤부터 Codex와 Claude Code만으로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직업은 디자이너이고, 개발 지식은 없는 상태라고 스스로 밝혀요. 그의 글 절반은 "디자인 탈출해라. 프로덕트 디자인 미래 없어요."로 시작하는 @Bae의 유튜브 영상에 대한 반론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 반론의 증거로 내놓은 작업기입니다. 저는 뒤쪽 절반을 실무 리뷰의 눈으로 읽었습니다.
몇 주 만에 한 사람이 해낸 일
결과물 목록은 인상적입니다. Shadcn을 바탕으로 AI가 참고할 세부 가이드라인까지 넣은 디자인 시스템을 약 1주일에 세웠고, 그 위에서 사이드바 메뉴만 45개인 어드민을 약 2주 만에 다시 만들었어요. 콘텐츠 검수, 뉴스레터 제작, 자동메일 관리, 외부 도구에 의존하던 설문 폼, 헬프센터, 광고 통계가 거기 들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메뉴들의 상당수가 AI의 작업대라는 점이에요. 콘텐츠 검수에서는 AI가 글을 수집해 품질을 1차 평가하고 초안 분류와 이미지 편집까지 해 둡니다. 뉴스레터 도구에서는 사용자의 클릭과 북마크 데이터를 분석해 직군별 초안을 쓰고, 헬프센터에서는 자주 들어오는 문의를 자동으로 등록한 뒤 그걸 바탕으로 답변 초안을 만들죠. AI가 초안을 내고 사람이 검수하는 자리를 운영 곳곳에 만들어 둔 겁니다. 디자인 시스템 덕분에 기본 화면을 뽑는 건 쉬웠지만, 복잡한 기능을 쓰기 편하게 다듬는 데는 디자이너의 관점이 필요했다는 말도 붙어 있습니다.
이어서 서비스의 오래된 화면을 약 1주일 동안 전부 교체하고 배포까지 자동화했고, React 기반으로 새로 짓는 서비스는 사용자 전체 화면을 3일에 끝냈습니다. Figma는 한 번도 쓰지 않았고요. 주력 모델은 Codex GPT-5.6 Sol, 토큰이 모자랄 때만 Claude를 보탰습니다. 비용은 구독료 월 $200에 많을 때 $100~200이 더 붙는 수준. 반대편 장부에는 어드민 쪽에서 월 고정비 100만원가량, 인프라 최적화에서 월 300만원 이상 절감이 적혀 있습니다.
셈법만 보면 고민할 게 없는 거래죠. 다만 이 절감액을 "디자이너가 AI로 번 돈"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돈이 나온 곳은 외부 도구를 내재화한 것과 인프라를 정리한 것이고, 둘 다 디자인 역량보다 결정권에서 나온 성과거든요. 이 점은 뒤에서 다시 짚겠습니다.
빨랐던 일과 멈춘 일
작업기를 속도 기준으로 다시 늘어놓으면 패턴이 보입니다. 빨랐던 일은 디자인 시스템, 어드민, 기존 화면 교체. 전부 정답이 이미 존재하던 일이에요. 어드민은 레거시가 있었고, 교체할 화면은 원본이 있었고, 컴포넌트는 Shadcn이라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멈춘 일은 하나, 새 서비스입니다. 본인의 표현으로 “서비스 가치와 기능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막히기 시작했다”. 구체화되지 않은 기능과 화면을 AI만으로 만드는 건 까다로웠고, 넓은 웹 화면을 AI만으로 구성하는 것도 아직 쉽지 않다고 적었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스케치나 와이어프레임은 필요하다고 보고, 작업된 화면 일부를 Figma MCP로 넘겨 다듬을 계획이라고요.
Figma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을 두고 그는 디자이너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Figma 없이도 직관적인 구성이 가능했다고 해석합니다. 저는 한 발 더 나가서 Figma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다고 읽었어요. 시안을 그리는 도구에서 명세를 적는 도구로요.
이건 그가 영상에 맞서 내놓은 두 번째 반론과 정확히 같은 모양입니다. 개발이 가장 먼저 자동화된 이유를 그는 두 가지로 설명해요. LLM과 마찬가지로 언어 기반이라는 것, 그리고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거나'로 성패가 갈리는 일이라는 것. 좋은 디자인은 정의부터 모호하고, 프로덕트 디자인의 성과는 독창성이 아니라 제품의 지표로 평가받는다는 말이 뒤따릅니다. 세 반론 가운데 제가 가장 높게 치는 대목이에요. 그의 몇 달이 이 주장을 다시 증명했으니까요. 성패가 분명한 일은 몇 주 만에 끝났고, 성패의 기준을 사람이 정해야 하는 일 앞에서 멈췄습니다.
첫 번째 반론도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영상은 디자이너를 UX와 비주얼 중심의 포지션으로 놓고 말하는데, 국내 테크 업계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비주얼 중심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와 국내는 역할이 다를 수 있다는 단서를 먼저 단 건 공정했습니다. 근거로 든 게 토스가 디자인 포지션을 비주얼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나눈 사례 하나뿐이라 일반화하기에는 얇지만, 역할에 대한 정의는 받을 만해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일은 멋진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리텐션이나 매출을 위해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과 실행을 반복하는 일이고, 멋진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AI 이전에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그가 새 서비스 앞에서 멈춘 자리가 바로 그 문제를 파악하는 자리였습니다.
품질에 대한 기록은 더 가감이 없습니다. 특별한 프롬프트나 스킬은 필요 없었지만 결과물은 “랜덤 뽑기에 가깝다”. 첫 결과물은 기대의 10~20% 수준이었고, 북마크 보드 기능 하나를 세부 모션과 디자인 디테일까지 다듬는 데 피드백이 100번쯤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여요. “사실 디자인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속도를 내려고 기능별로 세션을 나눠 여러 기능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만드는 쪽은 그렇게 병렬로 늘릴 수 있어요. 늘릴 수 없는 건 100번의 피드백을 주는 한 사람의 눈입니다. 투자사 vntg ventures의 웹사이트를 만든 이야기도 같은 결론으로 끝나요. Midjourney $10 플랜으로 그래픽 베이스를 만들고 Codex로 Canvas 인터랙션을 구현했는데, 그가 남긴 조언은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목표의 수준을 높이려면 평소에 다양한 레퍼런스를 봐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드는 비용이 0에 가까워지자 병목이 명세와 판정으로 옮겨 간 겁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일, 나온 것이 좋은지 가려내는 일. 그래서 그가 만든 것 중에 제 눈에 가장 값진 건 어드민이 아니라 미리보기 도구였습니다.

구현된 화면 위에서 로그인 여부, 데이터가 가득한 상태와 빈 상태, 라이트와 다크 테마를 바꿔 가며 검수하는 패널이에요. 피드백을 100번 해야 한다면 피드백 한 번이 싸야 합니다. 리뷰가 핵심 업무가 되는 순간 리뷰 비용을 낮추는 도구가 생산성의 본체가 되죠. 코드 리뷰가 밀리는 팀이 CI부터 손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공담에서 빠져 있는 조건
이 속도에는 글에 적히지 않은 조건이 깔려 있습니다.
일단 승인 체계가 없어요. 창업자이자 유일한 구성원이라 어드민을 갈아엎든 사용자 화면을 통째로 교체하든 설득할 PM도, 리뷰를 기다릴 엔지니어도 없습니다. 팀에 속한 디자이너가 같은 도구를 쥐어도 같은 속도가 나오지 않는 첫 번째 이유예요. 앞에서 미뤄 둔 절감액도 여기 걸립니다. 외부 폼 도구를 끊고 인프라를 정리하는 건 기술의 문제이기 전에 권한의 문제니까요.
대안이 "아무것도 안 함"이었다는 점도 큽니다. 서핏은 개발 팀 해산 이후 몇 년간 개발이 멈춰 있었어요. 멈춘 서비스에서는 AI가 만든 코드의 위험보다 아무것도 못 고치는 위험이 더 큽니다. 이 조건에서 그의 선택은 합리적이에요. 매일 배포하는 엔지니어링 팀이 있는 회사라면 비교 대상부터 달라지고요.
개발자로서 제일 걸리는 건 세 번째입니다. 추천 순서를 설명하는 대목에 “개발을 모르는 상태에서 복잡한 인프라를 재구축”했다는 문장이 지나가듯 나오고, 에이전트 업무환경 소개에는 서버와 운영 오류를 자동으로 감지해 수정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Slack을 대신하는 Buzz 위에서 에이전트가 유저 요청을 먼저 처리하고 일감의 진행 현황까지 기록하는 화면입니다. Buzz는 잭 도시의 Block이 2026년 7월 공개한 무료 오픈소스 협업 도구이고, 에이전트가 API 요금이 아니라 LLM 구독의 주간 사용량으로 돈다는 점이 1인 기업의 장부에는 큰 장점이죠. 그런데 글 어디에도 AI가 고친 코드를 누가 읽는지, 장애가 나면 누가 원인을 찾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드민 사이드바에는 뉴스레터 발송과 회원 메뉴가 보여요. 운영에서는 AI의 초안을 사람이 검수하는 자리를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 놓고, 정작 코드에서는 검수자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읽을 수 없는 코드 위에 자동 수정과 자동 배포를 얹는 건 1인 기업이 감수하기로 한 위험이지, 팀이 따라 할 기본값은 아닙니다.
팀에서 따라 한다면
그가 권하는 순서는 그대로 받아도 좋습니다. 교육비 대신 구독료를 내고 직접 부딪힐 것, 디자인 시스템과 AI 가이드부터 만들 것, 부담이 적은 내부 도구에서 시작할 것, 다양한 케이스를 한눈에 보는 미리보기 화면을 만들 것. 디자인 시스템이 먼저인 이유는 경험에서 나왔어요. 정본이 없을 때 AI는 기능을 만들 때마다 비슷해 보이는 컴포넌트를 새로 만들어 냈고, 디자인 시스템을 정본으로 쓰라고 가이드에 못 박은 뒤에야 그 일이 사라졌습니다. 기존 코드가 Vue 2라서 React 기반인 Shadcn을 활용하기가 가장 까다로웠다는 고백도 있는데, 레거시가 있는 팀이라면 이 1주일을 더 길게 잡아야 합니다.
그의 디자인 시스템에서 제가 가져가고 싶은 건 독자 설정입니다. Foundation부터 컴포넌트, 템플릿, 차트까지 모든 항목에 AI를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넣었고, 세부적인 AI 가이드는 별도 탭으로 뺐어요. 사람이 읽는 문서에 AI용 주석을 단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에이전트를 1차 독자로 놓고 쓴 디자인 시스템입니다. 문서가 곧 명세가 되는 환경에서는 이쪽이 맞는 순서라고 생각해요.
팀 디자이너에게 제가 덧붙이고 싶은 건 경계선 하나입니다. 회귀 비용이 낮은 곳, 곧 어드민과 내부 도구와 프로토타입은 혼자 끝까지 가도 돼요. 사용자 화면은 디자인 시스템이 정본으로 선 다음에, 인프라와 배포는 엔지니어의 리뷰와 묶어서 갑니다. 디자이너가 코드를 못 읽어도 괜찮지만, 팀 안에 그 코드를 읽는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영상에 대한 세 번째 반론, 곧 AI가 디자인을 대체할 때쯤이면 창업가와 변호사와 의사도 대체된다는 말은 논증이라기보다 위로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 같이 어려워진다는 건 디자이너의 미래에 대한 근거가 못 되니까요. 글의 마지막 문장 “AI 시대에 뭐든지 가능해진 직군이 바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다”도 그가 보여준 증거보다 넓습니다. 증거가 가리키는 건 직군이 아니라 자리예요. 무엇을 만들지 정할 권한이 있고, 나온 결과가 좋은지 100번이라도 가려낼 눈이 있는 사람에게는 만드는 일이 더 이상 병목이 아니라는 것. 그 자리에 디자이너가 앉을 수 있다는 걸 이 작업기는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미래가 없다는 영상에 대한 가장 좋은 반론은 세 가지 관점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는 AI로 하는 모든 것 중에 디자인이 제일 어렵다”는 한 문장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