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를 그대로 둔 코카콜라 리브랜딩은 무엇을 고쳤나

코카콜라의 새 브랜드 시스템

펩시가 인스타그램에 'Logo Redesign Meeting'이라는 짧은 영상을 올렸습니다. 회의실의 참석자들이 기존 Pepsi 로고를 보며 "Old.", "Outdated."라고 평가하고, 마침내 새로 디자인된 로고가 공개되는데 화면에 뜨는 건 원래 로고 그대로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If it ain't broke, don't fix it." 코카콜라라는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코카콜라가 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개한 직후였으니 누구를 겨냥했는지는 분명했습니다.

코카콜라를 겨냥한 펩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코카콜라의 이번 리브랜딩은 200개가 넘는 시장에 적용됩니다. 패키지와 매장, 디지털 콘텐츠는 물론 자판기와 냉장고까지 코카콜라가 보이는 거의 모든 곳이 대상인데, 정작 로고는 그대로예요. 프로젝트를 맡은 에이전시 JKR(Jones Knowles Ritchie)은 처음부터 "How do you rebrand Coca-Cola? You don't."라는 말로 이 선택을 설명했습니다. 펩시의 농담이 웃긴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농담이 과녁을 빗나갔다고 봅니다.

고장 난 건 로고가 아니었다

펩시의 농담은 리브랜딩이 곧 로고 교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리브랜딩이라는 말에서 새 로고부터 떠올리니 그 전제는 잘 먹히죠. 하지만 코카콜라는 로고가 고장 났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흘려 쓴 Spencerian Script 로고와 강렬한 빨간색, 흰 물결 모양의 Dynamic Ribbon은 이름을 다 보여주지 않아도 코카콜라를 떠올리게 하는, 세계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자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장 난 건 그 자산이 현장에서 쓰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캔과 페트병뿐 아니라 냉장고, 자판기, 식당 메뉴판, 옥외광고, SNS, 웹사이트에 등장하고, 지역과 제품과 매체가 늘어날 때마다 거기에 맞춘 디자인도 함께 늘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기억하는 코카콜라다운 모습과 각 시장에서 실제로 만나는 코카콜라 사이에 간극이 생겼어요. 이번 프로젝트가 겨냥한 건 이 간극이고, 그래서 산출물도 새 마크가 아니라 색상과 서체, 레이아웃, 패키지, 사진, 모션을 하나로 묶은 규칙입니다.

편차를 줄이는 전제로서의 고정된 마크

한 걸음 더 나가면, 로고를 그대로 둔 건 보수적인 선택이 아니라 편차를 줄이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보입니다. 200개가 넘는 시장에서 로고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캔과 냉장고와 간판이 한꺼번에 교체될 리 없으니, 몇 년 동안 옛 로고와 새 로고가 같은 거리에 공존하게 됩니다. 편차를 줄이려는 프로젝트가 전환 기간 내내 편차를 하나 더 만드는 셈이에요. 마크를 고정해 두어야 나머지 규칙을 맞추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닙니다. 바뀐 건 자산의 위계예요. 1969년부터 써 온 빨간 사각형 Arden Square가 핵심 브랜드 마크로 다시 올라왔고, Dynamic Ribbon과 Coca-Cola Red는 더 적극적으로 쓰이며, 과거 광고에서 영감을 받은 서체 Better With의 활용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1969년부터 쓰인 Arden Square

어떤 자산을 주연으로 올리고 어떤 자산을 조연으로 둘지 정하는 것도 디자인 결정입니다. 같은 자산을 가지고도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인상은 달라지니까요. 펩시의 농담이 놓친 두 번째 지점이 이겁니다. 로고가 같다고 해서 브랜드가 같아 보이는 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영리하다고 본 건 Zero 계열의 처리입니다. 별개의 디자인을 새로 만드는 대신 같은 시스템 안에서 검은 Dynamic Ribbon과 검은 요소로 제품을 구분했어요. 편차는 대개 변주가 필요한 순간에 생깁니다. 시스템이 변주의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지 않으면 각 시장과 제품팀이 저마다 답을 만들어 내고, 그 답들이 쌓여 간극이 됩니다. Zero를 시스템 안에 들인 건 그 즉흥을 막는 장치입니다.

냉장고와 의류로 확장된 브랜드 시스템

냉장고 옆면을 감싸는 흰 리본과 스웨트셔츠를 가로지르는 리본이 같은 규칙에서 나왔다는 게 한눈에 보입니다. 로고가 보이지 않아도 코카콜라로 읽히는 이유가 이 일관성이고, 이번 작업이 공들인 것도 로고 바깥의 이런 장면들입니다.

좋은 리브랜딩이었는지는 언제 채점하나

이 글은 결론 대신 질문을 남깁니다. 140년 된 브랜드를 지키면서 변화시키는 영리한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펩시의 말처럼 고장 나지 않은 것을 굳이 다시 손본 것에 가까울까. 저는 이 질문에 지금은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개된 이미지는 JKR이 가장 잘 정돈된 조건에서 찍은 결과물이고, 이번 리브랜딩의 산출물은 그 이미지가 아니라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은 지켜질 때만 리브랜딩이 됩니다. 몇 년 뒤 서로 다른 나라의 편의점 냉장고와 식당 메뉴판, 지역 SNS 계정이 얼마나 같아졌는지가 진짜 채점표예요. 이 방식의 약점도 거기 있습니다. 새 로고는 그 자체로 교체 시점을 강제하지만, 로고가 그대로면 각 시장이 기존 소재를 계속 써도 당장은 티가 나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는 건 현장의 실행 동력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이 프로젝트의 절반은 디자인이 아니라 배포와 관리일 겁니다.

조건도 하나 붙여야 합니다. 이 전략은 140년 동안 쌓은, 누구나 알아보는 자산이 있는 브랜드에 맞습니다. 알아보는 자산이 약한 브랜드가 같은 말을 하며 로고를 그대로 둔다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습니다.

리브랜딩을 검토하는 팀이 코카콜라에서 가져갈 건 '로고를 바꾸지 말라'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시안을 그리기 전에 브랜드가 실제로 쓰이는 접점의 사진을 모으고, 변형이 몇 가지인지부터 세어 보세요. 문제가 마크가 아니라 간극이라면 산출물은 새 로고가 아니라 규칙과, 은퇴시킬 변형의 목록이어야 합니다. 펩시의 농담이 놓친 것도 바로 그 목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