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 퍼널에서 설득이 끝나고 방해가 시작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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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화면에서 “지금까지 9,700원 아꼈어요!”를 보여주는 건 다크패턴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정보고, 떠나려는 사용자에게 서비스가 마지막으로 건넬 수 있는 정당한 말이에요. 그러면 어디서부터가 문제일까요. 배민클럽 해지 과정을 8단계로 뜯어본 브런치 글은 이 물음에 “정당한 설득과 선택 방해가 뒤섞인 스펙트럼”이라고 답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월요일에 해지 화면을 고쳐야 하는 사람에게 스펙트럼은 기준이 되지 못해요.
제가 쓰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설득은 설득된 사람에게만 작동하고, 방해는 설득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작동합니다. 그 글이 기록한 화면들을 이 기준으로 다시 나눠 봤습니다.
마음을 바꿔야만 통하는 장치들
1~3단계는 해지의 뜻을 뒤집습니다. 작성자는 월 구독료 1,990원을 아끼려고 해지 화면에 들어갔는데, 화면은 해지를 매달 9,700원을 포기하는 선택으로 다시 정의해요. 이어서 아직 쓰지 않은 혜택 31,088원과 혜택 사용률 14%를 보여주고, 4~5단계에서는 '혜택 종료 D-3' 말풍선과 2,000원 쿠폰이 나옵니다. 손실 회피, 마감, 막판 제안. 교과서에 나오는 리텐션 장치이고, 전부 사용자가 읽고 나서 그래도 해지하겠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죠. 마음이 안 바뀌면 효과도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설득입니다.
설득이라고 해서 숫자까지 정직한 건 아니에요. 첫 화면 묶음을 보면 이렇습니다.

사용한 혜택이 1개, 미사용 혜택이 4개, 금액 기준 사용률이 14%. 한 달 동안 혜택의 86%를 쓰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건 이 구독이 이 사용자에게 과하다는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화면은 같은 숫자에 "아까운 금액"이라는 이름을 붙여 남아야 할 이유로 뒤집어 놨어요.
해지 사유를 묻는 6~7단계는 한술 더 뜹니다. '배달 횟수가 줄었어요'를 고르면 “한달에 한번만 시켜도 이득이에요”라는 반박과 함께, 배민클럽으로 매달 18,850원을 아낀다는 계산이 펼쳐집니다.

내역을 더해 보면 배달팁 할인 2,662원과 B마트 할인 4,088원, 그리고 인기 브랜드 할인 "최대" 12,100원입니다. 평균 두 개에 최댓값 하나를 더해 매달 아끼는 금액이라고 부른 거죠. 같은 사용자가 앞 화면에서 본 실제 절약액은 9,700원이었습니다. 배달을 덜 시키게 됐다는 사람에게 실제 절약액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를 내민 셈이에요. 분류하자면 설득 쪽이지만, 저라면 이 화면은 리뷰에서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마음이 그대로여도 작동하는 장치들
선을 넘는 건 다른 종류의 장치입니다. 사유 반박 화면에서 가장 크게 강조된 버튼은 '배민클럽 계속 이용하기'인데, 이걸 누르면 지금까지 통과한 단계가 초기화되고 처음 화면으로 돌아갑니다. 작성자는 마지막에 해지를 눌렀다고 생각했다가 첫 페이지로 돌아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서야 구조를 알아챘다고 적었어요. 이 장치는 누구도 설득하지 않습니다. 엄지가 한 번 잘못 나간 값을 8단계 재시작으로 물릴 뿐이죠. 해지할 마음이 그대로인 사람을 남긴다는 점에서 앞의 숫자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재시도는 더 나쁩니다.

한 번 취소했다가 다시 해지하러 들어가면, 맨 아래 있던 해지 버튼이 화면 중간의 흐릿한 목록 한 줄로 옮겨져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데 시도할수록 길이 흐려지는 겁니다. 여기에 사유를 고를 때마다 그 사유를 반박하는 화면이 붙어요. 이미 내린 결정을 다시 묻는 것, 원문이 '반복 간섭'이라고 부른 유형입니다. 초기화, 경로 변경, 반복 질문. 셋의 공통점은 사용자의 판단을 바꾸려 하지 않고 판단을 실행하는 비용만 올린다는 데 있습니다.
'해지 예약'은 죄가 없다
한 군데는 브런치 글과 생각이 갈립니다. 그 글은 마지막 단계에서 즉시 해지가 안 되고 '해지 예약'만 되는 점을 완결감을 떨어뜨리는 장치로 봤어요. 그런데 마지막 다이얼로그를 직접 읽어 보면 인상이 조금 다릅니다.

예약의 내용은 남은 혜택을 다 누린 뒤 결제일에 자동으로 해지된다는 것이고, 사용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화면에서만큼은 '해지 예약'이 검은 주 버튼이고 '이용 유지'가 텍스트예요. 주기 말 해지는 구독 서비스의 표준에 가깝고, 저는 이걸 방해로 묶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예약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 앞뒤에 있어요. 다시 가입하면 프로모션 가격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만 빨간색이고, 재시도 스크린샷의 첫 장은 9,000원 할인을 앞세운 '해지예약 취소하기' 팝업입니다. 끝났다는 확인은 흐리고 되돌리라는 권유는 선명합니다.
해지 화면은 이제 법이 읽는 화면이다
2025년 2월 시행된 개정 전자상거래법은 온라인 다크패턴 6개 유형을 규율하고, 6개월 계도기간을 거쳐 같은 해 8월부터 집행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브런치 글은 배민클럽의 흐름이 그중 잘못된 계층구조, 취소·탈퇴 방해, 반복 간섭 세 유형과 맞닿아 있다고 정리하면서, 위법 여부는 규제기관이 판단할 사안이라는 단서를 달았어요.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61.9%가 구독 취소 과정에서 다크패턴을 겪었다고 답했다는 숫자까지 놓고 보면, 해지 흐름은 그로스팀의 실험장으로만 둘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런 퍼널이 누군가의 악의로 한 번에 설계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단계마다 해지율을 지표로 실험을 돌리면 각 단계는 저마다 이겼다는 결과를 내고, 8단계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눌러 본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죠. 지표가 해지 완료율 하나뿐이면 진행 초기화 같은 결함도 성과로 잡힙니다.
월 1,990원짜리 구독을 지키려고 8단계를 쌓는 셈법은 이해합니다. 구독의 값은 구독료가 아니라 주문 빈도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 기준은 같습니다. 절약액을 보여주고 쿠폰을 한 번 내미는 데서 멈추는 팀은 리텐션을 하는 것이고, 유지 버튼에 초기화를 걸어 두거나 재시도마다 길을 옮기는 팀은 실수로 남은 사용자를 리텐션 숫자에 섞고 있는 겁니다. 해지 흐름을 가진 팀이라면 세 가지를 직접 눌러 보세요. 유지 버튼을 누르면 진행이 사라지는지, 두 번째 시도에도 길이 같은지, 같은 결정을 두 번 묻는지. 셋 중 하나라도 걸리면 그건 설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