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로 선물 거래를 한다고? 200억 달러 담보 시장이 이미 열렸다

GPU 금융 자산화

석유에는 선물 시장이 있고, 부동산에는 담보채권이 있어요. 신용카드 대출도 채권으로 묶여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거래되고요. 꾸준한 수요가 보장되는 시장에서는 리스크를 나누고 자본을 효율화하기 위한 금융 상품이 반드시 따라 등장해왔어요. 더 큰 자본을 유입시켜 시장 자체의 규모를 키우려는 움직임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핵심 자원인 GPU는 어떨까요? 실제로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사람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근데 대규모 자본이 긴밀하게 얽히는 구조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거든요.

5~6개월마다 2배 — GPU가 전략 자산이 된 이유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연산량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요. 딥러닝이 본격화된 2010년 이후, AI 모델의 컴퓨팅 수요는 평균 5~6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해 왔어요. GPT-3에서 GPT-4로 넘어오는 사이에만 필요한 연산량이 70배로 늘어났다는 추정도 있고요.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훨씬 앞지르는 속도예요.

수요가 폭발하면서 GPU는 단순한 부품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전략 자산이 됐어요. 2023년에는 엔비디아 H100 한 장의 시장 가격이 수천만 원까지 치솟았고, 구매 대기 기간이 수개월씩 밀리는 일도 벌어졌죠. AI 개발사들이 GPU를 확보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장기 계약을 맺는 방식까지 동원할 정도였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GPU를 담보로 이미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CoreWeave, Lambda 같은 AI 클라우드 기업들이 GPU를 담보로 수백억 달러를 조달했고, 업계 전체의 GPU 담보 부채 규모는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섰어요.

GPU 담보 부채 규모

200억 달러. 숫자만 보면 이미 시장이 형성된 것 같지만, 빠진 게 있어요. 적정 가격을 매기는 기준도, 리스크를 분산하는 파생상품도, 표준화된 채권 시장도 아직 없거든요. 담보 대출까지는 왔는데, 그 위에 올릴 금융 인프라가 텅 비어 있는 거예요. 최근 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공백이에요.

가격 지수부터 선물 상품까지 — 스타트업이 던진 도전장

GPU 거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가격이 불투명하다는 점이에요. 공급자마다 가격이 다르고, 상당 부분이 비공개 개별 계약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시장 가격이 뭔지 아무도 정확히 몰라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핀테크 기업 OneChronos는 원래 주식 거래 효율화를 목표로 설립된 회사예요. 올해 6월, GPU를 포함한 컴퓨팅 자원 묶음을 경매 방식으로 거래하는 시장을 열 계획이에요. 불투명한 GPU 거래에 공개적인 기준 가격을 만들겠다는 거죠. 주식 시장의 경매 메커니즘을 컴퓨팅 자원에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발상인데, 꽤 과감하더라고요.

Ornn이라는 스타트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어요. 엔비디아 H100을 비롯한 주요 GPU 모델의 가격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OCPI(Ornn Compute Price Index)를 개발한 거예요. 단순히 얼마에 팔겠다는 호가가 아니라, 실제로 체결된 거래 가격만을 데이터로 활용한다는 게 핵심이에요. 호가와 실거래가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이게 왜 중요한지 바로 감이 올 거예요.

Ornn OCPI 가격 지수

Ornn은 전 세계 50개 이상의 데이터센터에서 30,000개 이상의 GPU를 운영하는 Hydra Host와 파트너십을 맺어 실시간 인프라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어요. 미국을 동부, 중부, 서부 3개 권역으로 나눠서 지역별 가격 편차까지 반영해요. 같은 H100이라도 동부와 서부에서 가격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Architect Financial과 협력해 이 지수 기반의 GPU 선물 상품 출시도 추진 중이에요. 이미 2025년 12월에는 최초의 컴퓨트 스왑 거래가 체결됐고, Kalshi 등 규제 거래소에서 OCPI 연동 상품도 거래되기 시작했어요. 2025년 12월. 불과 몇 달 전 일이에요.

신뢰할 수 있는 가격 지수가 시장에 안착하면, 그 위에 더 복잡한 금융 상품을 쌓을 수 있어요. GPU 묶음을 담보로 한 채권 같은 것 말이에요.

GPU 금융 시장이 열리면 누가 어떻게 쓸까

GPU 금융 시장이 실제로 열리면, 이해관계자마다 활용법이 달라져요.

AI 스타트업 창업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게요. 6개월 뒤 모델 학습에 GPU가 대량으로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사이 가격이 두 배로 뛰면? 사업 계획 전체가 흔들리잖아요. 선물 계약으로 지금 가격을 미리 확정해두면 이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어요. 비용이 예측 가능해지면 투자자들도 더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되는 부수 효과도 있고요.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또 다른 포지션이에요. GPU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신형 칩이 나오면 보유 자산의 가치가 순식간에 쪼그라들 수 있거든요. 콜옵션과 풋옵션을 판매해 프리미엄을 받아두면 수익을 안정화하고 이 리스크를 완충할 수 있어요.

GPU 금융 시장 참여자

GPU 금융 상품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만을 위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시장 상황에 따라 GPU 가격 변동이 예측된다면, 개인 투자자도 풋옵션 같은 파생상품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참여자가 유입될수록 시장의 유동성이 높아지고, 그것이 다시 금융 상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음악 저작권은 됐고, SaaS 채권은 망했다 — GPU는?

새로운 금융 자산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어떤 자산이 금융화에 성공하고 어떤 자산이 실패했는지를 보면, GPU의 가능성이 좀 더 뚜렷해져요.

성공 사례부터 볼게요. 2018년 설립된 Hipgnosis는 레드핫 칠리 페퍼스, 플리트우드 맥, 샤키라 등 45,000곡의 저작권 로열티를 담보로 2024년 14억 7,0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어요. 핵심 전략은 예측 가능성이었어요. 수십 년간 검증된 히트곡의 스트리밍 수익은 예측하기가 쉽거든요. 디지털 자산이라 지리적 제약도 없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 않죠. 비틀즈의 노래가 50년 뒤에도 팔리는 것처럼, 감가상각이 거의 없다는 게 성공의 핵심이었어요.

음악 저작권 채권화

데이터센터도 비슷해요. 건물과 장기 임대 계약을 담보로 한 ABS(자산유동화증권, Asset-Backed Securities) 시장은 2018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해 2025년 기준 연간 2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어요. ABS는 대출이나 임대료, 구독료 등 미래에 들어올 현금흐름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이에요. 개별 자산을 묶어 투자자에게 파는 방식이죠. AWS, 구글 같은 빅테크가 임차인이라 수익이 안정적이고, 10년, 20년짜리 임대 계약이 현금흐름을 보장해주니 채권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근데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2019년 등장한 핀테크 스타트업 Pipe. SaaS 기업들의 구독 수익을 채권화해 투자자에게 파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2021년 기업가치 20억 달러를 달성했어요. B2B 서비스의 구독료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가정 위에 세워진 사업이었죠.

근데 2022년 금리가 오르고, 동시에 SaaS 시장 전반이 침체에 접어들자 그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투자자들은 리스크 있는 자산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고, Pipe의 고객사인 SaaS 스타트업들도 자기 고객들이 구독을 취소하면서 수익이 줄어들었어요. 경기가 나빠지자 기초 자산의 가치와 투자자 수요가 동시에 사라진 거예요. (이게 제일 무서운 시나리오예요.)

정리하면 이래요. 금융화에 성공한 자산은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하고, 가치 하락 속도가 느리며, 외부 충격에 기초 자산과 투자 수요가 동시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실패한 자산은 그 반대였고요.

네 가지 조건으로 따져본 GPU의 현재 위치

이 기준을 GPU에 그대로 적용해 볼게요. 네 가지 조건으로 나눠서.

첫째, 정량화. 석유에 배럴이 있고 전력에 MWh가 있듯, GPU 거래에도 공통 단위가 필요해요. GPU의 정량화는 현재 진행 중이에요. GPU마다 아키텍처와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ompute Hour'라는 개념이 제안돼 있어요. 기준 칩의 성능을 1로 놓고 실제 칩의 성능을 상대적으로 환산하는 방식인데, 아직까지 업계 전반의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

둘째, 가격 투명성. 아직은 초기 단계예요. Ornn의 OCPI가 실거래가 기반으로 GPU 가격을 추적하는 지수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GPU 거래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비공개 개별 계약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시장 전체를 포착하기에는 데이터가 제한적이에요.

셋째, 예측 가능한 가격 변동성. GPU 금융화의 가장 큰 문제예요. 음악 저작권과 데이터센터가 금융화에 성공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가치 하락 속도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GPU는 정반대 상황이에요. 효율이 개선된 칩이나 새롭게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면 기존 모델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 어렵잖아요. 애초에 그 등장 여부를 확신할 수도 없고요. Pipe가 "구독료는 안정적이다"라는 가정에 기댔다가 무너진 것처럼, GPU 금융화도 "AI와 지금의 GPU 칩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는 가정에 지나치게 기대면 같은 구조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요.

넷째, 시장 규모. 유일하게 충족된 조건이에요. AI 붐 속에서 GPU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금융 상품을 사고팔 시장 자체는 충분해요. 다만 시장 자체가 빠르게 성장한 만큼, AI 투자 열기가 식으면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지금 충족된 유일한 조건인데, 그 지속성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해요.

네 가지 중 하나만 통과 — 그래도 움직이는 사람들

네 가지 조건을 놓고 보면, GPU는 아직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어요. 솔직히 당장 전면적인 금융화는 어려워 보여요. GPU 금융화는 전면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시점부터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죠. 당장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기술 혁신의 속도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는 조건들이 하나씩 갖춰지길 기대해 볼 수 있어요.

근데 이 얘기가 "안 된다"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이건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이 하나 더 생기는 차원이 아니거든요. GPU의 금융화는 시장을 연결하고, 자본이 필요한 곳으로 더 쉽게 흘러갈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 변화예요. 만약 현실이 된다면 AI 산업 전체의 자본 효율을 높이는 인프라가 될 수 있어요.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 흐름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가격 지수를 만들고, 파생상품을 설계하고, 경매 시장을 여는 사람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잖아요. 2025년 12월에 최초의 컴퓨트 스왑 거래가 체결됐고, 규제 거래소에서 OCPI 연동 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한 건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좀 더 긴 시야로 지켜봐야 할 흐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