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국 금지 5년이 키운 하루 400만 건 자동화 스타트업

헤드라인

마이크로소프트 자진 퇴사 후 얻은 건 5년간 미국 입국 금지였어요. 이게 농담이 아니에요.

캐나다에 살던 스물두 살 맥스는 주말에 시애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국경에서 세관 직원이 물었죠. "직업이 뭡니까?" "없습니다." MS를 얼마 전에 그만뒀으니까요. "얼마나 머무르시죠?" "이틀만 있다 돌아갑니다." 세관 직원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어요. 사유는 불법체류 의심. 앞으로 5년간 미국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통보.

실리콘밸리 취업도, 미국 고객도, 투자자 미팅도 전부 원천 차단. 대기업으로 돌아가는 길도, 미국에서 창업하는 길도 막혀버렸어요. 남은 건 노트북 한 대. 그 노트북으로 시작한 회사가 2년 뒤 하루 400만 건의 업무를 돌리는 검루프(Gumloop)가 돼요. 벤치마크(Benchmark) 주도로 5,000만 달러(약 700억 원) 투자받은, 인스타카트·쇼피파이·도어대시가 고객인 그 검루프입니다.

맥스 브로두어-어바스, 검루프 공동창업자 겸 CEO

맥스의 인터뷰를 다섯 주제로 정리했어요. 대기업 퇴사, 10번의 실패, 코딩 모르는 사람들의 역설, 네트워크에 대한 오해, 그리고 채용 철학.

석 달짜리 아이디어가 6개월 동안 10번 죽었다

맥스는 MS 시절을 딱 한 줄로 정리해요. "지금 회사에 써먹은 건 하나도 없다. 이력서에 멋지게 박힌 회사 로고 하나뿐." '대기업에서 경험 쌓고 창업' 하겠다는 사람 대부분이 높은 연봉에 발 묶여 결국 못 나온다는 거예요. 이른바 '골든 핸드커프(golden handcuffs)' 현상이죠.

검루프 랜딩 페이지

결국 그만뒀어요. 밴쿠버 여자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석 달씩 아이디어에 매달렸죠. 만들어놓고 사람들한테 "이거 괜찮지 않아?" 보여주면서 "좋다"는 말 기다리는 식. 좋다는 사람은 끝내 안 나타났어요.

그러던 중 입국 금지. 실리콘밸리라는 선택지가 통째로 사라지자 맥스는 방식을 확 바꿨어요. 일주일에 하나씩, 새 아이디어를 최소한의 제품으로 만들고 온라인에서 직접 홍보. VR 게임 욕설 탐지, 웹사이트 봇 탐지, 사기 방지 플랫폼. 반응 없음, 관심 없음, 매한가지. 6개월간 10번 넘게 만들고 접었어요.

그 과정에서 맥스가 깨달은 한 줄.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이게 왜 될까'가 아니라 '이게 왜 안 될까'부터 파고들 겁니다. 파고 또 파도 안 되는 이유가 안 나오면, 그때 진짜 해볼 만한 아이디어입니다."

스타트업에서 가장 값진 경험은 "내 아이디어가 틀렸다"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 "된다"를 확인받으려 하지 말고, "이건 왜 안 되는지"를 파고들라는 얘기예요.

코딩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열광했다

MS 시절 맥스의 자리

2023년, 오토GPT(AutoGPT)가 인터넷을 뒤흔들어요. AI가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픈소스 프로그램. 맥스도 흥미가 생겨 디스코드 커뮤니티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본 풍경이 황당했어요.

"깃허브가 뭐예요?" "터미널이 뭐예요?" "설치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기술에 가장 열광하는 사람들이, 실은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이게 바로 맥스가 본 기회였어요.

며칠 만에 뚝딱 만든 에이전트허브(AgentHub). 디스코드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링크를 보내줬어요. 그런데 사용자가 늘수록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어요. AI 에이전트 자체가 쓸 만한 물건이 아니었던 거예요. 같은 일을 시켜도 매번 다른 결과, 엉뚱한 데로 새는 일이 다반사. "AI 프로그램을 올리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는데, 정작 공유할 만한 AI 에이전트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진짜 원한 건 뭐였을까. 알아서 판단해 주는 AI가 아니에요. 내가 정한 순서대로, 뻔하지만 확실하게 돌아가는 자동화.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시킨 대로만 정확하게 하는 도구.

맥스는 방향을 뒤집었어요. 자율적인 AI 에이전트 플랫폼 → 단계별로 작업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자동화 도구. 그게 지금의 검루프예요. 처음엔 개발자들이 주로 썼는데, 정작 열광한 건 마케팅·영업·인사·운영팀이었어요. 매번 개발팀한테 "이걸 만들어 달라" 요청해야 하는 답답함에 지친 사람들. 전체 사용자의 80%가 코딩 모르는 비개발자.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직접 자동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매번 개발팀한테 '이걸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론 결국 한계에 부딪히니까요."

검루프가 입소문을 타면서 Y Combinator에서 연락이 왔어요. 첫 주에 유료 전환 결정. 가격 월 20달러(챗GPT 구독료가 20달러라 그보다 비싸게 받을 자신은 없었대요). 스트라이프 첫 결제 알림 울리던 순간 팀 전체가 환호. 그 첫 고객은 지금도 검루프를 쓰고 있어요.

"AI 에이전트 50개로 회사 굴린다"는 거짓말

여기서 맥스가 SNS에 넘치는 AI 허세에 한마디 해요.

"AI 에이전트 50개로 회사를 운영하고, AI 임원진이 매일 뭘 해야 할지 알려준다고요? 그건 자동화가 아닙니다. 쓰레기 제조기(slop machine)에 가깝죠."

X나 스레드에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하면서 1,000만 달러 법니다" 떠드는 사람들. 맥스는 그 대부분이 거짓말이라고 단호해요. 이런 부류를 '코스 브로(course bro)'라고 부르더라고요. 온라인 강의를 팔면서 쉬운 성공을 약속하는 사람들. "이 강의만 사면 부자 됩니다", "이 워크플로우만 따라 하면 주말에 3만 달러 법니다."

"정말로 주말에 3만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왜 SNS에서 남한테 공짜로 알려주겠습니까?"

솔직히 이 부분 읽으면서 웃었어요. 암호화폐 때도, NFT 때도 같은 패턴. 새 기술이 뜰 때마다 쉬운 길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믿은 사람들이 피해. AI도 똑같은 자리에 있어요.

맥스의 원칙은 명확해요. 자동화는 내가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일에만 써야 한다. 모르는 일을 AI에게 맡기면 결과가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 자체가 안 돼요. 코딩 전혀 모르는 채로 AI한테 코딩 시키면, 어느 날 보면 보안 구멍 뚫린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

여기서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얘기가 나와요. 테슬라 AI 총괄 출신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가 만든 표현. 원리 이해 없이 느낌만으로 AI에게 코딩 시키는 것. 맥스는 바이브 코딩만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해요. 빠르게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디선가 무너진다고.

"저는 AI를 제가 아는 걸 더 빨리 하는 데 씁니다. AI가 저 대신 모르는 걸 해주길 바라지 않아요. 이해를 건너뛰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맥스의 전망 하나. 어쩌면 기본기를 제대로 갖춘 마지막 세대 엔지니어가 이미 태어났을 수도 있다고요. 원리를 이해한 뒤 AI로 속도를 내는 사람 vs 이해 없이 AI만으로 찍어내는 사람. 지금은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솔직히 이 부분은 좀 무서운 얘기죠.

진짜 네트워크는 네트워킹 파티에 없다

YC 기간 내내 맥스는 미국 입국 금지 상태. 실리콘밸리 행사도, 동기 모임도, 투자자 미팅도 직접 못 감. 스타트업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데, 그 기회 자체가 원천 차단.

그런데 맥스는 오히려 그게 나았다고 해요. 밴쿠버 작은 원룸에서 할 수 있는 건 코딩밖에 없었거든요. YC 합격의 설렘은 있었지만 주의를 흩뜨릴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직 제품.

맥스의 공동창업자

거기서 맥스가 직접 경험으로 깨달은 것. 좋은 제품을 만들면 투자자가 먼저 찾아온다. 투자 없이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투자자 쪽에서 먼저 미팅을 요청해요. "좀 기다려 달라"고 하는 쪽이 오히려 내가 돼요.

맥스의 공동창업자는 행사에 거의 나가지 않아요. 너무 안 나가서 문제일 정도. 실리콘밸리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공동창업자를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자리에 앉아서 일만 하고 있으니까.

"진짜 뭔가 대단한 걸 만들고 있는 사람은 네트워킹 파티에 없습니다. 거기 갈 시간이 없거든요."

명함 돌리는 게 네트워킹이 아니라 쓰고 싶은 걸 만드는 게 진짜 네트워킹이에요.

채용은 소개팅처럼

검루프 채용 방식은 조금 독특해요. 기존 인맥을 통해 채용하거나, 고객사에서 직접 합류하는 경우가 대부분. 실제로 고객사였던 인스타카트에서 검루프 쓰던 사람이 팀에 합류했고, 웹플로우(Webflow)와 쇼피파이 출신 직원도 있어요. 매일 서비스를 직접 쓰면서 제품의 가능성을 체감한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 따로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비전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요. 이미 매일 쓰면서 제품이 어디로 가는지 몸으로 아니까.

맥스는 채용을 소개팅에 비유해요.

"상대방한테 나를 좋아해달라고 사정할 수는 없잖아요. 이 사람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채용도 마찬가지예요. 최고의 인재가 합류하고 싶은 회사를 먼저 만드는 게 순서죠."

공동창업자 합류 스토리가 딱 이 논리예요. 맥스가 검루프 초기 버전을 시연하던 날, 화면 위에서 자동화가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눈빛이 달라졌대요. 다음 날 합류 결심. 아이디어를 아무리 멋지게 설명해도 사람 마음은 잘 안 움직여요. 눈앞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걸 보여주면 이야기가 달라지고요.

검루프 팀 단체 사진

검루프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어요. 야근 강제도 없어요. 그런데 다들 자발적으로, 열정적으로 일해요. 맥스가 채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

"이 사람과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가."

단순한데, 이 기준으로 사람을 모으면 분위기가 저절로 좋아지고, 좋은 분위기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끌어들여요.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부르는 선순환.

"내가 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확신

맥스는 창업 첫날부터 이런 말을 들어야 했어요.

"재피어(Zapier, 1세대 업무 자동화 서비스)가 이미 시장을 깔고 앉아 있잖아. 그리고, 오픈AI가 직접 만들면 어쩌려고?"

안 될 이유를 떠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근데 맥스는 그런 걱정만 붙들고 있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고 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확신. 그게 창업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멋진 말은 아니에요. 근데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랬어요.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 해요. 시작해야 실패하고, 실패해야 배우고, 배워야 되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매일 하는 업무, 매주 반복하는 작업. 그걸 AI와 함께 처리해보는 것부터. 하나를 자동화하면 다음이 보이고, 다음을 자동화하면 또 그다음이 보여요. 하루 400만 건을 돌리게 된 검루프의 출발점도, 결국 그 '하나'였으니까요.